전 세계 개화식물의 87%가 벌을 비롯한 수분매개곤충에 수분을 의존하듯, 벌도 개화식물의 꽃을 통해 필수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수분매개곤충의 먹이가 되는 꽃과 나무인 밀원식물. 왜 필요할까요?
벌은 밀원식물의 화분(꽃가루)에서 단백질을, 꽃 속의 화밀(꿀)에서 탄수화물을 섭취합니다. 이렇게 섭취한 영양분은 벌의 면역력을 키우는 데 필수적입니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벌에게 치명적인 네오니코티노이드 계 살충제와 전염병에 더 취약해집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화분을 섭취한 벌은 그렇지 못한 벌보다 수명이 최대 2배나 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밀원식물이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산림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밀원면적은 1970, 80년대 대비 약 70%나 줄어들었으며, 그 종류도 4~5월에 꽃이 피는 아까시나무에만 집중되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밀원식물의 양과 종류가 줄어들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자, 벌이 영양분을 섭취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벌에게 필요한 밀원식물인 꽃과 나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밀원식물 중에서도 소수의 나무만 마구잡이로 늘린다면 더 큰 생태계 파괴로 이어집니다.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국내 밀원식물은 적게는 250여 종, 많게는 555여 종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정부가 규정한 밀원식물은 양봉산업법에 명시된 40종 (꽃 15종, 나무 25종)에 불과합니다. 학계와 한국 정부가 규정한 밀원식물 종류가 이토록 크게 다른 이유는 밀원식물을 규정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양봉산업법은 꿀벌이 주로 찾아가는 꽃과 나무만을 중심으로, 학계는 꿀벌뿐 아닌 다양한 야생벌이 찾아가는 꽃과 나무까지 모두 포함해 밀원식물로 분류한 것입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결국 잘못된 산림 정책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는 양봉산업법에 등록된 40여 종의 밀원식물, 그 중에서도 꿀벌이 자주 찾아가는 소수의 식물을 중심으로 밀원면적을 늘리고 있습니다. 나머지 활엽수는 주로 벌목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존에 침엽수와 활엽수 등 다양한 나무가 있는 혼효림을 아까시나무와 헛개나무 등 소수의 나무들만 있는 특화림으로 바꾸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아까시나무에만 집중된 밀원면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되려 야생벌과 나비 등 다양한 수분매개곤충에게 필요한 서식지와 다양한 종류의 밀원식물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에는 250만 봉군에 달하는 양봉꿀벌과 3~10만 봉군의 재래꿀벌, 4,000여 종에 달하는 야생벌 등이 살고 있습니다. 기존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꿀벌뿐 아닌 야생벌도 모두 필요합니다. 따라서 모든 벌이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림을 지키면서 유휴지에 더 많은 꽃과 나무를 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도심에도 잎벌 등 다양한 야생벌들이 살고 있기에, 집 근처에서 피어난 꽃도 벌과 나비 등 수분매개곤충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수분매개곤충이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으로 파괴되는 생태계에 큰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벌을 위해 피어나는 한 송이 꽃,
수분매개곤충과 생태계를 지키는 첫 발자국이 됩니다.
함께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