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1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희생당했다는 가슴 아픈 일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먼 나라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잊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큰 전쟁을 겪고 있는 다른 한 나라를 잊지는 않으셨나요? 네,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1년 반 이상 지속되는 전쟁으로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형 발전소를 향한 폭격은 지난 몇 주간 60차례 이상 계속돼 전력 공급 차단 뿐 아니라 대형 화재와 재난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원자력발전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폭격으로 삶과 생활을 잃는 위협만 있는 것이 아닌,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선 피폭의 위험도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린피스는 러시아 군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는 이번 겨울, 방사능 누출 피해로부터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고자 우크라이나를 횡단하며 방사선 조사와 방사선 센서 설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센서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공습을 경고하는 사이렌이 끊임없이 울렸고, 오데사 지역에서 마지막 방사선 센서를 설치했을 땐 폭격이 예고되어 방공호에 3시간이나 갇혀있기도 했습니다.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이어진 현지 조사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철저한 준비와 전문성을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달성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모를 위급상황을 대처할 수 있도록 사전에 전시 상황 맞춤형 응급처치 교육을 이수하였고, 현장에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쟁 전문가도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러시아 군의 공격이나 위협을 피해 미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현지 단체와 함께 비밀리 조사와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1986년 4월 26일 초르노빌(체르노빌의 우크라이나식 발음)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합니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방사능 오염 확산의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그에 따른 피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원전 사고 재난의 모습이 그린피스가 방사선 현지 조사를 지속하는 이유이며, 원전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년 그린피스는 초르노빌 현지 조사를 통해 러시아 군이 초르노빌을 점령하며 방사성 물질을 확산한 정황을 폭로했습니다. 1년이 지난 올해, 초르노빌은 여전히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현지 연구소의 파손되었던 설비 중 일부는 복구가 어려워 정확한 조사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린피스는 정확한 현황을 알아보고자 우크라이나 현지 단체와 함께 초르노빌에 들어갔습니다.
초르노빌 원전 가까이에 호수 하나가 있습니다. 이 호수는 과거 냉각수로 쓰였던 냉각 호수 입니다. 원전을 가동했을 당시에는 지속적인 냉각수 공급을 위해 호수의 수위를 적절히 맞췄지만, 원전을 폐쇄하며 냉각 호수 또한 폐로 작업의 일환으로 수위를 차츰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냉각 호수 안에는 37년 전 원전 사고로 인해 분출된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호수 속에서 쌓여있던 방사성 물질들은 호수가 가물어 가며 공기 중으로 확산되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호수 인접한 곳엔 프리비야트 강이 있는데, 이 강은 드니프로 강으로 합류돼 수도 키이우로 이어집니다. 많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식수로 쓰이는 강에 방사성 물질이 확산되진 않았을지 염려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 조사가 필요합니다.
그린피스는 수십년간 초르노빌에서 현지 조사를 진행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현지 단체와 함께 올해부터 다년간 이어질 냉각 호수에 대한 본격적인 방사선 조사를 착수했습니다. 냉각 호수의 샘플을 채취하고, 호수의 물이 빠진 자리의 공간방사선량을 측정하며 핫스팟 위치까지 확인했습니다. 전쟁으로 국경을 통과하는 것부터 지뢰로 인한 위험한 조사 환경까지, 이번 조사는 많은 한계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방사선 현지 조사는 원전 사고 지역에서 그린피스가 독립적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지속해서 수행해 온 임무이며, 시민들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이번 냉각 호수 조사는 현황 조사였으며, 내년부턴 로봇과 같은 첨단 장비를 이용한 정밀 조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린피스 우크라이나 조사팀은 초르노빌에서의 방사선 조사를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횡단하며 방사선 센서 설치 작업을 이어 나갔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 러시아 군은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하여 지뢰 매설, 병력 배치 등 원전을 군사 기지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원자력 공사 로사톰이 자포리자 원전 운영권을 요구하며 자포리자 원전의 정상적인 가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원전들이 러시아 군과 러시아 원자력 공사 로사톰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기에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선 5대 기본 원칙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UNSC)에 제출하여 분쟁에 개입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군은 이를 위반하고 있으며, IAEA는 이러한 상황을 규제하지 않은 채 자포리자 원전만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5대 기본 원칙
원전으로부터, 그리고 원전을 향한 발포 금지
발전소를 중화기 저장 또는 병력 주둔 기지로 사용 금지
외부 전력 공급선 보호
모든 필수 구조물, 계통, 요소를 공격 또는 파괴로부터 보호
상기 원칙을 저해하는 행위 금지
그린피스는 지난 9월 러시아 군이 자포리자 원전에서 1~18km 내에서 러시아 군의 로켓이 발사됐다는 것을 확인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IAEA 시찰단은 이러한 정황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포리자 원전의 일부 공간만 점검한 뒤 안전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그린피스는 정확한 시찰을 요구하였지만, IAEA는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 단지인 자포리자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날 경우 인근 지역 주민뿐 아니라 이웃 나라에도 방사선 피해가 미칠 수 있습니다. 자포리자 원전 위기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이유는 이미 초르노빌 원전 사고를 통해 원전 사고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각지대에 놓인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린피스는 이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우크라이나 전역에 방사선 센서를 설치했습니다. 방사선 센서로 원전 사고를 막을 순 없지만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우선 가장 안전 문제가 불거진 자포리자 원전 인근 지역에 먼저 설치하고, 우크라이나 남부 원전과 인구 밀집도가 높은 오데사 지역까지 여러 지역에 방사선 센서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시민 누구나 방사선 센서 결과를 연동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현지 조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방사능의 위협으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그린피스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년 초르노빌 냉각 호수의 정밀 검사를 위한 준비를 착수할 것이며, 자포리자 원전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IAEA에 정확한 시찰과 규제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미 한 차례의 원전 사고를 겪은 우크라이나에 원전으로부터의 재난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그린피스 캠페인에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