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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Jul 13. 2024

휑뎅그렁하다; 속이 비고 넓기만 하여 허전하다

정신과 세 번째 입원 전의 나날들

휑뎅그렁하다; 속이 비고 넓기만 하여 허전하다

공허함을 느끼는 날들이 늘어갔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고 누구를 만나도 어떤 이야기를 해도 공허했다.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내가 죽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죽으면 그제야 나를 보러 오겠지, 이젠 볼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러, 말이 없는 나와 이야기하러.    

 

식사를 자주 걸렀다. 안 먹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해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주체할 수 없이 머릿속을 팽팽 휘젓고 다녔다. 그러다가 갑자기 신이 나곤 했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화하고 이야기했다. 까무러치고 싶었고 동시에 신나게 뛰어다니고 싶었다. 난도질하고 싶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슬픔과 즐거움이 공존해서 기분의 폭이 너무 널뛰기하던 나날이었다.     


피를 철철 흘려서 몸속의 피가 다 빠져나가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누군가가 머리채를 잡고 벽에 퍽퍽 찧는다. 이마가 찢어지고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상상을 한다. 너무 잔인한가요? 원래는 더 잔인했었는데 이건 나아진 건데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토할 것만 같다. 아무도 모른다. 그게 퍽 억울하기도 했다.

또다시 자해를 시작했고 그걸 찍어두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민수처럼 아물어가는 상처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김유림, 거울운동). 내가 이렇게 용감해요. 내가 이렇게 우울해요. 내가 이렇게 힘들어요.


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끝내 나는 아무것도 할 힘이 없었다.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잠에도 들 수 없었다. 기억을 자주 잃어버렸고 명랑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미쳐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타인은 이해불가해의 영역이라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읊조리며 다녔다.    

  


<정신과 일반병동의 세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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