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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May 17. 2019

고양이는 고양이 나름

절대로 물지 않는 고양이와 모든 것을 무는 고양이

  이로를 키우기 시작한 지 사흘이 채 되기 전에,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고양이는 정말 고양이 나름이라는 것을. 이로는 내 입에서 "감당이 안 돼."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고양이었다. 대체 이 손바닥만 한 작은 생명체에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있는 건지, 하루 종일 에너자이저가 따로 없었다.


  가장 문제는 '입질'이었다. 솜솜이는 초음파 검사를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그날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나를 문 적이 없었다. 고체 간식을 줄 때 간식인 줄 알고 손가락까지 입에 집어넣었다가도, 그게 집사의 손이란 걸 아는 순간 다시 놓아버렸다. 손가락을 눈앞에 들이밀어도 핥아줄 뿐, 무는 법이 없었다.

  이로는 아니었다. 이로는 끊임없이 물었다. (사실 아직도 물고 있다.) 온 집안을 우다다 뛰어다니다가 내 이불도 물었고, 스크래쳐도 물었고, 내 핸드폰도 물었고, 노트북도 물고, 손도 팔도 발가락도 다 물었다! 결국은 내가 피를 보기까지 했고, 이 버릇을 대체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머리가 다 아팠다.

내... 사탕도... 자기가 문다......

  내가 우선적으로 시도한 것은 인터넷과 동물 병원 선생님을 통해 아기 고양이가 대체 '왜' 무는지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보통 고양이가 사람을 물 때는 1. 지 말라는 의사를 전달하거나 2. 놀아달라고 조르거나 3.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4. 이가 나는 것이 가려워서 라고 했다. 이로는 아직 어렸으니까 4번의 이유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였고 시도 때도 없이 모든 걸 물고 다녔으니 1번은 거리가 멀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로를 충분히 놀아주고, 물 수 있는 다른 장난감들을 주고, 내 손은 놀잇감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일이었다. 언뜻 간단하게 들리지만 사실 쉽지 않았다. 이로가 나를 물 때면 나는 손으로 이로의 코를 가리키며 "스읍!" "안 돼!" 하고 말했지만 이로는 자신의 코를 가리키는 그 손을 물려고 달려들었다. (......)

  정말 별별 시도를 다 했다. 이로가 나를 물면 나도 이로를 물거나(물론 살짝 물었다.), 손가락을 되레 입 깊숙이 집어넣거나, 콧잔등이나 머리를 가볍게 때리거나, 이로에게서 등을 훽 돌리고 앉거나, 이불을 이로에게 3초 정도 뒤집어 씌웠다. 사실상 그 어떤 방법도 큰 효과는 없었지만 - 여전히 이로는 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 과거에 비해서 그 횟수가 줄어들기는 했다.


  그 외에도 이로의 다양한 행동들은 내가 고양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솜솜이는 정말 얌전한 고양이었다. 채터링(고양이가 사냥감을 보고 내는 위협적인 그르릉소리)도 한 적이 없었고, 꼬리펑(놀라거나 무서울 때 고양이가 털을 세우면서 꼬리가 부푸는 것)도 한 적이 없었다. 무려 하악질 한 번을 본 적이 없었다.

  이로는 집에 온 지 사흘이 되기 전에 그 모든 것을 다 했다. 정말 전부 다. 쥐돌이를 물고는 그르릉 그르릉대면서 절대 놓지 않으려고 하기에, 결국 염려가 되어서 참치로 살살 꾀어야 할 지경이었다. 이 이상한 고양이는 내가 쓰다듬어주면 골골송을 부르다 말고 갑자기 한 번씩 하악질을 했고(아직도 원인을 모른다...) 자기가 자기 꼬리에 놀라서 꼬리펑을 했다.

  그런 주제에 겁도 없고 낯가림도 없어서, 잘 때면 자신의 집으로 가서 잤던 솜솜이와는 달리 꼭 내 옆이나 내 위에서 잠에 들었다. 집에 있는 내내 사람을 쫓아다니며 자신을 아는 척하라고 울어댔고, 내가 다른 것에 집중하면 방해하기 일쑤였다. 내 친구들이 놀러 오면 처음 보는 사람이면서 아무렇지 않게 무릎 위에 올라가고 골골거렸다.

  우스운 것은, 솜솜이는 택배나 가스 점검 등의 이유로 낯선 사람이 집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나가서 확인하고는 했는데, 이로는 호다닥 숨으러 가버린다. 고양이들의 사고 체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의 첫번째 고양이와 두번째 고양이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서, 대체 어느 쪽이 더 '고양이다운' 고양이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둘의 똑 닮은 점은, 내가 집에 돌아오면 자다가도 나를 마중하기 위해 뛰어온다는 점이다. 내가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가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자기 얼굴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대면 코를 가까이 대고, 가끔은 입 주변을 핥아준다.

  고양이는 정말 고양이 나름이지만, 모든 고양이들이 자신의 집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만은 똑같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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