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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Apr 27. 2019

두 번째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일

솜솜아, 언니 너무 미워하지는 마.

  솜솜이가 별이 된 이후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데'와 '나 하나도 괜찮지 않아'를 오락가락했다. 저번 글에도 썼지만 하루는 방에서 아무 생각없이 뒹굴며 넷플릭스를 봤고, 하루는 15분 걸리는 거리를 1시간에 걸쳐 혹시나 고양이가 없는지 골목길과 주차장을 죄다 뒤졌다. 밤에 걷다 보면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환청인지 진짜 들린 건지를 구별하지 못해서 귀를 잘라버리고 싶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온라인에서는 포인핸드와 온갖 카페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애썼다.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수도 없이 보면서도 그 시간들은 끝없이 괴로웠다. 솜솜이가 별이 되기 전부터 내 핸드폰에는 이미 포인핸드가 깔려 있었고, 내가 그 아이를 그 아이 자체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냥 고양이면 됐던 게 아닌지 자기검열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첫 아이를 보내고 나면 다시는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다던데 나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스스로가 너무 혐오스러웠다.

  그러던 와중에 3살배기 터키시 앙고라를 입양할 기회가 닿았다. 솜솜이는 먼치킨이었지만 유난히 터앙이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고양이 사진을 미리 받아보니 새하얀 털이며 몇몇 자세들이 솜솜이와 정말 비슷했다. 솜솜이가 아프지 않고 잘 컸다면 이렇게 생겼겠지,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아이였다. 복막염은 1-2년 이하의 아이들이 많이 걸리니까 그런 점에서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양 절차 역시 순조로웠고, 틀림없이 묘연이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확신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산산히 조각났다. 다이어리에 색깔 볼펜으로 정성들여 적어둔 '○○오는 날♥' 위에는 가로로 두 줄이 그어졌다. [죄송해요.] 입양 예정일의 하루 전날, 오후 10시가 넘어서 온 연락이었다. 아가는 한 번 입양을 갔다가 딸의 비염이 심하다는 이유로 파양 의사를 전달받은 상태였는데, 그 딸이 고양이 보내지 말라고 펑펑 울고 있다며 입양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분노보다 절망감이 앞섰다. 답장을 보내긴 보내야겠는데 입이 바짝 마르고 손이 떨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도 집에 돌아가면서 고양이 소리에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묘연이라는 단어가 참을 수 없이 원망스러웠다. 그건 그냥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단어였다. 키우게 되면 묘연이고 못 키우게 되면 묘연이 아닌 것 뿐인, 솜솜이와 그 아이가 닮았건 말았건 하나도 소용이 없는 그런 단어일 뿐이었다. 내일이 되면 다시 내 옆에 작은 생명체가 있게 될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리던 마음은 갈 길을 잃었고 나 또한 다시 방황의 시작이었다.

  이로를 만나기 전까지.


이로와의 첫만남

  원래 나는 하얀 고양이를 유난히 좋아했는데, 이로는 삼색 고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솜솜이 때처럼 묘연을 떠올리거나, 이 아가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로를 데려온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고양이가 없으면 미칠 것 같았고, 이로와 타이밍이 잘 맞았다. 입양 계약서를 써서 보냈고 연락이 왔다. 내가 입양자로 확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드디어 살았다, 고 생각했다.

  이로를 처음 만났을 때, 이로는 70일도 채 되지 않은 나이였다. 솜솜이보다도 어렸고, 심지어 단모종이다보니 너무 마르고 작아 보였다. 게다가 춥지 않은데도 겁을 먹었는지 몸을 좀 떨었고 애처롭게 울었다. 원래 모든 고양이는 '야옹'하고 울지 않지만 이로는 정말 고양이 같지 않은 소리를 냈다. 거의 비명같이 들렸다. 그 소리마저 귀여웠고, 내가 이 아이를 솜솜이만큼 아끼지 않으면 어떡하나 했던 고민은 그 순간에 싹 사라졌다.

  이로를 데려오기 전까지 나는 솜솜이가 무척 사람을 잘 따르는 개냥이고, 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단단히 틀렸다는 걸 알게되었다. 이로는 그동안 솜솜이가 심어놓은 고양이에 대한 인상을 다 깨부셨다. 솜솜이는 입양 첫 날 내 방에서 나가지 않았고 숨어들기 급급했는데 이로는 12시간도 안 되어서 주방에 안방까지 들락거렸다. 솜솜이가 한 달쯤 더 자란 후에야 뛰어 올랐던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갔고, 자기를 아는 척 하라고 하루종일 울어댔으며, 내가 눕거나 엎드리면 일단 내 위에 올라와 식빵을 틀었다.

알려준 적도 없는데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같은 고양이인데도 너무나 다른 모습의 이로를 보며 나는 자주 솜솜이를 떠올렸다. 평균 수명이 15년이라는 고양이가, 1년도 채 살지 못하고 병으로 아프기만 하다가 떠난 솜솜이를. 매일 붙잡고 억지로 밥을 먹이고 약을 먹였다. 괴로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아가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비싸다는 이유로 신약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배변을 가리지 못할 때 그 뒤처리를 하는 일이 가끔은 귀찮았고, 건강했을 때와 달리 시들하게 늘어져있는 모습을 보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 아이에게 믿을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나는 과연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는지 아직도 장담할 수 없다.


  저번 글에도 썼지만, 반려인들 사이에는 '죽은 뒤에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그게 진짜라면 솜솜이는 나를 마중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맴돈다. 어쩌면 너는 나를 보기 싫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바보 같이 나를 기다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나같은 건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를 잊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너무도 빨리 다른 아이를 데려왔으니까. 그리고 내가 네게 좋은 주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가끔, 네가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용서해줬으면 좋겠다. 실제로는 날 기억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내가 그렇게 바라는 것 정도는 용서해줘. 미워해도 괜찮은데, 너무 많이 미워하지만 말아줘.

  여전히 너무 많이 사랑해, 솜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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