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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Mar 10. 2019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고양이

반려동물과 이별해본 적이 있나요

  2019년 2월 26일 오후 2시 23분 즈음에, 솜솜이는 고양이 별로 떠났다.


  복막염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솜솜이는 눈에 띄게 기운이 없어졌고, 평소에도 많지 않던 식욕이 부쩍 줄었다. 한달 가량을 AD캔과 생식을 강제급여 했고 새벽 즈음에만 몇 알 정도의 사료를 먹었다. 자진해서 먹는 건 삶은 닭가슴살 정도였다. 그러니 그 닭고기마저 먹지 않기 시작했을 때, 내가 이런 상황을 아주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2월 말부터 솜솜이는 자꾸만 색색, 소리를 내며 숨을 쉬었고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앉은자리에서 대소변을 봤고, 몸이 자꾸만 무너지고 제대로 걷지 못해 내가 식빵 자세를 잡아주면 그냥 그대로 있었다. 마비가 오는 것처럼 가끔 경련했고 그럴 때면 나는 솜솜이를 주물러주면서 얼른 다시 말랑말랑해지기를 기도했다.


  그날도 강제급여를 막 마치고 솜솜이가 소변을 볼 것 같기에 아래에 키친타올을 깔아준 참이었다. 솜솜이는 그 거칠한 감촉이 맘에 들지 않는지 매번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비틀었다. 아픈 와중에도 열심히 그루밍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깔끔을 떨던 솜솜이니까, 지금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날지 안쓰러워 마음이 먹먹했다.


  그날은 평소 늦게까지 자던 내가 웬일로 일찍 일어났고,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솜솜이를 붙잡고 오랜만에 빗질을 해줬던 날이었다. 강제급여와 가루약, 배변 때문에 몸 여기저기 털이 뭉쳐있던 것들을 닦아내고, 엉킨 털을 빗기고, 끊임없이 나오는 털 때문에 솜솜이가 두 마리가 된 것 같아 웃었다. 깔끔해진 애기는 여전히 예뻤다. 애기를 토닥토닥 두드리고 쓰다듬었다.


  마지막 경련은, 평소보다 훨씬 심하게 찾아왔다. 솜솜이는 몸을 덜덜 떨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지 칵칵 이상한 소리를 냈다. 몸을 주무르고 안아주고 괜찮아, 괜찮아하며 솜솜이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아가의 동공이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로 동그랗게 커졌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련이 잦아들 때 나는 요즘 매번 손을 가져다 대었던 그곳을 짚었다.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솜솜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솜솜이는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심장이 안 뛰어. 내가 내 입으로 그렇게 말해놓고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내가 안고 있는 솜솜이는 아직 따뜻했다. 살도, 근육도 다 말랑말랑했다. 솜솜이의 눈을 감기려는데 잘 되지 않았다. 어느 한 편으로는 내가 곁에 있을 때 가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게 '죽음'인지 믿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제 몸이 굳어지고, 차가워지고, 이 안에 살아 숨쉬던 생명이 없다는 걸 아는데,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솜솜이의 SNS 계정에 글을 썼다. 지금껏 아가를 사랑해줬던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고르면서 생각보다 나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음이 아팠고 눈물이 났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솜솜이의 몸이 굳어가는 걸 느끼면서도 담담할 수 있었다. 많이 울라는 친구의 말에 그럴게, 하고 대답하면서 웃을 수 있었다.


  눈물이 터진 건 그 다음날 밤이었다. 그날 밤도 아니고 그 다음날 밤. 방에 더 이상 솜솜이가 없었다. 평소에는 안아들면 도망가려고 하는 주제에 자다 깨면 맨날 내 몸 위로 올라와 꾹꾹이를 하던 아가가 없었다. 다리가 간지러워서 보면 바로 옆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던 네가 없었다. 내가 뭔가 부시럭거리면 나타나서 참견하던 너도, 화장실에 가면 문 앞에서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던 너도, 집에 돌아오면 자다가도 번쩍 일어나 호다닥 마중을 오던 너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이상하게 생수보다 수돗물을 먹으려고 하는 너를 위해 화장실 문을 열어둘 필요도 없었고, 네가 모래 덮는 소리가 들리면 가서 감자와 맛동산을 치워줄 필요도 없었고, 아침에 사료가 없다며 먀아악 먀아악 우는 너를 위해 일어날 필요도 없었고, 네 이름으로 별칭을 해둔 통장에 돈을 모을 필요도 없었고, 외출했을 때 집에서 전화가 오면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감각을 경험할 필요도 없었다. 네가 없어졌으니까.


  밤새 펑펑 울면서 네 생각을 했다. 내가 너한테 몇 백만원의 돈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서 미안해. 병원 갈 때마다 이렇게 작고 마른 너한테 무겁다며 칭얼대서 미안해. 1년도 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네가 가장 힘들었을 텐데 왜 나를 이렇게 쉽게 버리고 가느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자꾸만 네 탓을 하고 싶어지는 나쁜 집사라서 미안해. 네 빈자리가 너무 커서 당장이라도 새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은 사람이라 미안해.


  그 다음날은 또 괜찮은 것 같았다가, 늦은 밤 동네 골목길과 주차장을 헤집으며 고양이를 찾겠다고 돌아다녔고, 하루는 이제 마음이 가벼워진 듯하다 느끼다가, 그 다음날은 자꾸만 귓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생명이 꺼지는 순간을 눈 앞에서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정말 그 어떤 고양이보다도 예쁜 나의 솜솜. 나의 동생이었고, 딸이었고, 반려였고, 주인이기도 했고, 고양이기도 했던 나의 솜솜. 사실 고양이별같은 것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친구의 말처럼 눈물이 길이 되어 네가 고양이별에 간 거라면 좋겠다. 그곳에는 병도, 약도 없어서 네가 건강하게, 누구보다도 활기차게, 그리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죽은 다음에 나같은 걸 위해 마중 나오지 않아도 좋아. 그곳에서 네가 나를 잊어도 상관없어. 그러니 아가, 나의 사랑하는 솜솜아. 부디 네게 행복한 세계가 있기를 바라. 행복해줘,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의 고양이, 솜솜아.


사랑해, 솜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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