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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아재 Jan 25. 2020

이건 비상이야

캘리포니아, 산불과의 전쟁

'띠링 띠링' 새벽 5시 15분경, 곤히 잠들어 있던 내 머리맡에서 핸드폰이 급히 요동쳤다. 묵고 있던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였다. "My neighborhood is under mandatory evacuation. Please evacuate. (산불 대피 명령이 떨어졌어요. 대피하세요.) "
"하.. 미친.. 이럴 줄 알았어."
전날 잠에 들기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조금은 반신반의였다. 자정에 숙소를 떠나려다 참았는데, 그냥 떠났어야 했나.. 비로소 후회가 막심했다.




소노마(Sonoma)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나에게 벌어진 실제 상황이다.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해 놓고 계획했던 여행을 이틀 앞두고 대형 산불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노마의 와이너리를 즐기고 근처 경치 좋은 산길을 하이킹하려던 계획은 다 깨져 버렸고, 어찌해야 할지 호스트와 에어비앤비 사측에 여러 번 문의하였지만 집이 위치한 곳에 직접적인 산불 영향이 없어 예약 취소 시에 돈을 환불해 줄 수 없다는 개똥 같은 응답이었다. (사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산불은 숙소에서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굉장히 상황이 애매했다.) 몇백 불을 날릴 수도 있다는 억울함이 컸을까, 여행을 강행했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별문제 없이 체크인 후 저녁을 먹고 잠시 쉬다 잠을 청했는데 새벽에 강제 대피 명령이라는 사달이 난 것이다. 에어비앤비 호스트, 경찰, 소방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경고 문자가 울렸다. 정전으로 암흑 같은 마을을 뒤로한 채 마치 피난길을 연상시키는 꽉 찬 101하이웨이를 쫓기듯 새벽 5시에 운전하는 기분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요상야릇한 기분이었다.


 

우리 숙소는 대피 명령 지역의 끝부분인 Zone 9에 속해 있었다.


캘리포니아 역사상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2018년 11월의 캠프 산불(The Camp Fire)이 발생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2019년 10월 23일 늦은 밤,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Napa Valley)와 함께 유명한 와이너리 동네인 소노마 카운티(Sonoma County)에서 또다시 역대급 큰 산불이 다시 발생했다. 소위 킨케이드 산불(The Kincade Fire)로 이름 지어진 이 산불은 며칠이 지날 때까지도 진압률 15% 밖에 되지 않아 건조한 날씨와 강풍을 타고 계속해서 번. 2017년도까지 최악의 산불이었던 튭스 산불(The Tubbs Fire)이 불과 2년 전이다 (이 역시도 소노마에서 발생했었다). 캘리포니아는 이제 매년 산불 기록을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산불과의 사투를 매년 펼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역대 가장 큰 산불 20개 가운데 절반 이상인 10개가 2015년 이후에 발생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한마디로 기후 변화(Climate change)일 것이다. 따뜻해진 날씨는 좀 더 길어진 건기와 가뭄을 불러오고, 바싹 말라 있는 나무들은 아주 작은 스파크로도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산불은 점점 더 잦은 빈도로 그러고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 요즘은 글로벌 워밍이 크나큰 문제라는 말을 미디어를 통해 수 없이 들어왔지만 생각해 보면 앞으로 초래될 미래는 인간에게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산불의 피해는 건물이나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직접적인 영향 말고도 수많은 나무들이 타게 되면 발생하는 대기 오염에 있다. 1 에이커 (대략 1200평)의 나무가 타서 없어지는 것은 10대의 차가 1년 동안 대기 오염을 발생시키는 것과도 같은 피해라고 한다. 사실 무지한 내 과학적 지식으로, 처음에 큰 산불이 났다고 기사를 접했을 때는 누군가 산불을 일부로 지른 것으로 착각했었다. 이곳 캘리포니아의 가을은 습도가 아주 낮고 비가 오지 않으며 강풍이 불어 메말라 있는 나무와 풀들은 쥐똥만 한 스파크에도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인화물이 되어버린다. 더군다나 미국의 집들은 대부분 목조로 지어진다.


18,804개의 건물을 태우고 85명이 죽은 2018년도의 캠프 파이어는 캘리포니아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었다. (출처:CalFire)





인재인가, 자연재해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캠프 산불의 원인은 인재가 맞았다. 오래된 전선들을 제때 수리하지 않아 일어난 작은 스파크로 어마어마한 산불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PG&E(Pacific Gas & Electic), 미국을 대표하는 이 초대형 전기 회사는 2018년과 2017년에 일어난 산불들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20조 이상의 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2019년 1월에는 파산 신청을 하는 지경에 이르다. (2017년 산불 전 주당 $60-70 하던 주가는 반토막의 반토막의 반토막이 났다.) 모든 조사가 끝난 후, 2019년 12월에 나온 재판 결과에서, PG&E는 본인들의 장비 정비 실패와 그로 인한 낙후된 장비 결함이 산불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캠프 파이어 희생자들에게 사과와 함께 $13.5 빌리언(한화 대략 15 조가량)의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동의다.


작년 10월 말 내가 간접적으로 겪은 소노마의 킨케이드 산불은 다행히 인명피해를 낳지는 않았다. 최악의 캠프 산불을 1년 전 겪은 덕택인지 건조주의보가 내리기 시작 할때 소방당국은 미리 경보를 울렸고, PG&E는 수많은 지역에 바람이 많이 부는 밤과 새벽 사이에 일부러 전력을 차단하는 강제단전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이 발생하는 것은 막지 못했고, 불을 완전히 진압하는 데는 무려 2주 이상이 걸렸다. 화마는 400채가 넘는 건물을 태웠고, 3만 헥타르가 넘는 면적을 태웠다. (이해를 돕기 위해, 1 헥타르면 대충 3천 평이고 3만 헥타르면 300제곱킬로미터이다. 이 정도면 서울 전체 면적의 절반에 해당되는 크기이다. ) PG&E는 다시 한번 킨케이드 산불의 원인 제공으로 지목당하며 며칠전 소노마 카운티의 발표에서 시는 PG&E를 상대로 현재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파산신청에 관한 기업 구조조정이 얼추 정리되고 (파산신청이 통과된다고 무조건 회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하반기 즈음 소노마 시가 소송을 걸어 승소하게 된다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자리해온 이 대형 전기회사는 이제는 정말로 오랜 시간 자생하기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던 아름다웠던 소다 락(Soda Rock) 와이너리가 이번 소노마 킨케이드 산불로 완전히 전소했다.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아마존 산불도 있었다. 지구 전체 산소의 20%가 넘는 양을 공급해 온다고 알려져 지구의 허파라고도 불리는 아마존에 작년 여름 발생한 야생 산불로 어마어마한 숲과 나무들이 전소되었다. 무려 700만 헥타르가 넘는 면적이 탔다고 한다. 건기 중 아마존에 산불은 자연적으로 어느 정도 발생해왔지만 이번 산불에 대해서는 몇 가지 원인들에 대한 말들이 있다. 소를 키우기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일부로 태운 불들이 원인이 된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남의 농장을 뺏기 위한 조직들의 방화가 원인이 라고도 하고, 아마존을 끊임없이 개발하려는 브라질 정부의 문제라고도 한다. 무엇이 직접적인 원이이었던지 간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 크나큰 피해는 분명 그대로 인간에게 전해질 것이다. 아마존 산불로 전소된 나무들의 피해는 몇백만 대의 차가 1년 동안 내뿜는 매연과 같은 피해이다. 전 세계의 공기 악화는 앞으로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다.


지구 반대편의 호주 또한 난리가 났다. 호주를 보면 산불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나라 전체가 타고 있는 지경이니 말이다. 호주 전역에 지속된 극심한 가뭄과 고온 현상, 그것과 맞물린 건조한 바람을 타고 무려 5개월째(!!) 미친 산불이 현재진행형 중이고 여태까지 최소 5억 마리가 넘는 야생동물이 죽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전체 땅덩어리보다 더 큰 면적이 잿더미가 되었다. 지금 호주에서 사람들이 들이마시게 되는 산불 연기는 인체에 하루에 담배를 몇 갑 피우는 것과 같은 타격이라고 한다. 2017년 나파/소노마에서 발생한 튭스 산불 때 발생한 산불 연기가 바람을 타고 샌프란 시스코를 가득 메웠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매캐한 연기에 한 일주일간은 시내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상당히 낯선 광경을 만들어 냈고, 우리 회사를 비롯한 수많은 회사들은 너무도 안 좋은 공기 탓에 며칠간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권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나사(Nasa)의 호주 산불 위성사진. 정말 나라 전체가 불타고 있는 느낌이다.




비상이다. 이건 정말 비상이야. 자연재해라고 하면 보통 십 년, 이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해야 되지 않냐는 말이다. 기후 변화가 자연재해의 패턴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하나, 이렇게 점점 더 잦은 빈도로, 매년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결국 모든것은 인재라는 말일까? 그렇다고 해가장 큰 원인인 인간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거대 산불 기사를 접할 때마다 유튜브를 통해 검색해보는 산불 영상은 그야말로 지옥이 있다면 그 모습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하고 무섭다. 거대한 산불 앞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첨단 과학 기술도, 할리우드의 화려함도 전부 소용이 없다. 제발 2020년에는 큰 산불이 나지 않기를.





지옥을 뚫고 킨케이드 산불지역을 탈출하는 차들, 후덜덜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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