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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아재 Sep 09. 2018

빛이 있으라(Fiat Lux)

버클리(Berkeley)에 대한 단상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는 나에겐 서바이벌과도 같았다. 어렸을 적에 우리 집은 찌들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치를 부릴 만큼 딱히 여유로운 적도 없었다. 부모님은 늘 두 분 다 쉬지 않고 일을 하셨었고, 서민이라는 흔한 단어가 딱 들어맞는 가정환경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요즘 유행하는 수저로 비유하자면 동수저는 못되었고 다행히 흙수저나 똥수저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으니 아마 그 중간의 어딘가쯤, 나무 수저(?) 정도였을까.


푸념 같은 건 딱히 없었다. 집안의 모든 경제적인 여건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충당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스무 살 때 처음 주차단속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미국에 건너와서는 일식집 주방 보조, 수학센터 튜터, 마켓 캐쉬어, 학교에서 각종 리서치의 마루타로 참여(!), 작은 전파상의 회계장부관리, 그리고 기숙사 식당일과 사무 보조 일까지 스물다섯 살에 학부를 졸업하기까지 거의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런 생활이 너무 좋았다.



You will be defined not just by what you achieve, but by how you survive.  - Sheryl Sandberg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일은 나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적지만 나 스스로 번 돈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되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고 쇼핑을 한다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또 취미와 관련된 새 장비들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꽤나 보람된 일이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일주일에 많아야 열댓 시간 남짓이었으므로 여전히 빈곤했던 것은 변함이 없었고, 공부를 병행하며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당연히 있었지만, 그냥 조금이나마 독립적인 내 모습이 무척이나 좋았다. 셰릴 샌드버그(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의 위 버클리 졸업식 축사처럼 나를 정의하는 것은 내가 이룬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아왔느냐이기 때문이다.




UC 버클리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경제학과(Economics)에 3학년인 주니어(Junior)로 편입하게 되어 처음 들어갔을 때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경험들을 했다.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1학년으로 대학 생활을 잠시나마 했었는데 한국 대학생들과 비교하자면 미국 대학생들은 정말 '심하게' 편한 차림으로 학교를 다녔다. 특히 이른 오전 수업에는 기름진 머리와 잠옷 바지(트레이닝복이 아닌)를  한 강의실에서 열명 이상은 무조건 발견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좀체 보기 힘들 일이다. 버클리 학생들은 1년 중에 정말 무수히 많은 날들을 학교 로고티, 후드티 등의 패션으로 버텨낸다.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정말 지나가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교 티나 학교 후드를 입고 있을 정도이다. 사실 처음에는 되게 이해 못할 일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Fun fact - 미국은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라는 곳에서 2년 동안 기초과목 수업들을 다 들은 후 3학년으로 편입하는 제도가 있다. 한국에 비하면 미국은 편입 제도가 상당히 잘 되어 있고 과외 활동보다도 성적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유학생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방식이기도 하다. 학교마다 조금씩 편입 방법은 다르다.)

패션에 대해 기왕 말을 꺼냈으니 하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여대생들이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보다 메지 않은 모습을 찾는 것이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훨씬 더 쉬웠다. 요즘에야 이쁘고 패셔너블한 백팩이 많이 나왔지만, 자타공인 패셔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책가방 대신 가벼운 토트백이나 핸드백을 한쪽 손에 들고 전공책은 한두 권 정도 느낌 있게 반대쪽 손으로 안아 들어주는 것이 여대생룩의 완성이라던가. 사실 미국 대학교에서는 학생들 누구나 책가방을 메고 다닌다. 심지어 어깨가 아프니 바퀴가 달린 캐리어 같은 가방을 끌고 다니기도 한다. 예전에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이런 질문을 해서 이슈가 되기도 했었던 걸로 기억된다 '왜 미국은 여대생들이 핸드백을 안 들고 책가방을 메고 다니냐고' 아마도 미국 사람이 들으면 이게 도대체 말인지 방귀인지 할만한 질문이긴 하다. 학생이 책가방을 메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물어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양쪽 나라의 대학교를 다 경험해 본 내 입장에서 보자면 확실히 한국 대학생들이 넘사벽으로 패션과 유행에 민감하고 남들 눈에 이쁘고 멋지기 보이기 위해 신경 쓴다. 남의눈을 많이 의식하고 안하고의 문화의 차이라고 보이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The tradition goes on.

버클리의 기말고사 기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충격적인 전통을 경험할 수 있다. 전통이라고 표현함은 오랜 기간 반복해서 행해져 왔기 때문인데 바로 기말고사 기간 메인 스택스(Main stacks)라고 불리는 중앙 도서관 안에서 학생들이 옷을 홀딱 벗고 나체로 뛰어다니는 광경이다. 한두 명이 아니라 50명 100명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다 함께 뛰곤 하는데, 남자고 여자고 자신의 중요부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뛰며 심지어는 구경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친구를 발견하면 이름을 외치며 하이 파이브를 치기도 한다. 아니, 빨가벗고 뛰는 학생들과 그걸 소리 지르면서 응원하는 학생들이라니!! Oh my eyes! 처음 봤을 땐 거의 눈알이 튀어나오는 경험(말 그대로 eye-popping experience)이었다. 그때 느꼈던 컬처 쇼크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몇천 명이 공부하는 도서관을 나체로 뛴다라니, 이건 뭐 용기도 용기인데 그냥 미국은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한 계기가 되었다. 재밌는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홀딱 벗고 뛰면 신기하게도 그게 그다지 야하게 느껴지지 않고 뭔가 동물적인 움직임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Fun fact - 버클리 이외에도 미국에는 홀딱 벗고 뛰는 전통을 가진 대학교들이 많이 있다, 이 정도면 미국의 한 문화로 인정해줘야 할지도.)



메인 스택스 (Main stacks)의 모습 - 바로 이 도서관 복도에서 학생들의 나체 뜀박질(naked run)이 한밤중에 대놓고 펼쳐진다.




미국은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끈끈하게 형성되어 있는 도시, 소위 캠퍼스 타운들이 많은데 버클리(Berkeley)도 그런 도시들 중에 하나이다. 각종 연구를 위한 연구시설도 많거니와 품고 있는 대학생과 대학원 학생수만 해도 4만 명 이상이 되다 보니 교수진, 연구원들, 그 가족들만 다해도 엄청난 숫자가 될 터이다. 다른 UC계열의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버클리 또한 연구대학(Research University)으로서의 역할이 큰데. 연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답게 학부 수업에 크게 열성적이지 않고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는 교수들도  있어서 어느 교수의 수업을 듣는지에 따라 수업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이기도 했다. 이 연구대학이라는 말이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연구를 통해 학문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목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학부생들을 가르치는 일보다는 대학원생을 양육해내는데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수가 많은 수업도 많았는데, 경제학과에서는 한 수업에 400명씩 듣는 수업도 허다했다. 나의 경우 처음부터 회계사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매 학기마다 경제학과 수업과 동시에 들었던 회계학 수업들은 소수정예로 모인 하스 비즈니스 스쿨 (Haas School of Business)에 속해 있었으므로, 학생수가 한 수업에 보통 20-30명뿐이어서 아무래도 교수님과의 소통이나 수업의 퀄리티면에서 훨씬 더 좋았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정원이 적다 보니 수강 신청을 하기가 진짜 진짜 힘들었었다. (Fun fact - UC 시스템 안에는 한국사람들에게 익숙한 UCLA와 더불어 UC Davis, UC Santa Cruz, UC Santa Barbara, UC San Diego, UC Irvine, UC Riverside, UC Merced, 그리고 의학 전문 대학원만이 있는 UC San Francisco까지 총 10개의 학교가 존재하고 있다.)

UC 버클리에서 지금까지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학교 안 가장 중앙의 편한 자리에 노벨상을 수상한 교직원(Faculty)들만이 주차를 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학교의 소소한 배려랄까. 그런데 그런 대단하신 교수님들이 즐비해 있는 덕택인지, 기억나는 버클리의 시험은 정말 입에서 절로 육두문자가 나올 만큼 어려웠다. 4학년 때 들었던 마지막 경제학 전공과목 몇 개는 시험 보면 전체 평균이 15점, 20점이 었던 과목들도 있었는데 전공서와 수업 내용을 아무리 밤새 공부해도 시험에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내용의 문제들이 출제되곤 했다. 그 배신감과 당황스러움은 진짜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시험이 시작되면서 시험지를 동시에 받아 들고 모든 학생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짠 듯이 내뱉던 그 긴 장탄식 '하아.....' 그 순간만큼은 모든 학생이 최고의 동지애를 느끼는 순간이었지 싶다. (Fun fact - 현직 버클리 교수들 중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7명이라고 한다. 출처)



UC 버클리는 흔히 캘(Cal) 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UC 중에 가장 최초의 대학교라는 자부심이 묻어 있는 이름이다. 황금곰이 학교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대학교 신입생 생활을 했을 때에는 술 먹고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많이 놀았었는데, 때때로 꼰대스러운 선배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곤욕스러울 때도 있긴 했었다. 그래도 나름 한국에서 중상위권의 대학교를 다녔는데 말도 안 되게 무슨 기강을 잡는답시고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운동장에서 한여름에 동기 녀석들과 동문회 선배들에게 단체 기합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꼭 그날 밤에 술을 왕창 먹이며 달래준답시고 하는 멘트들이 있었다.


'야, 우리 때는 훨씬 더했어.' '형들이 너희들 강하게 키우려고 하는 거다.'


생각해보면 정말 다들 애기애기한 나이인 건데 어설픈 꼰대 행세라니 내가 나이를 좀 더 먹고 보니 참 우스운 일이다. 미국 대학교에서는 깍듯이 누구 말을 들어야 할 일도 없었고, 뭔가 선후배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 그런 점에선 무척 편했다. 그래도 한국의 소소한 술자리 정이 유난히 그리운 날엔 자취방에 한국인 학교 친구들을 불러다가 소주와 삼겹실 파티를 벌이곤 했었는데, 그런 다음 날은 숙취 해소를 위해 꼭 베트남 쌀국수집을 찾아 국물을 흡입했던 추억이 있다.


안타깝게도 버클리로 처음 이사 오고 한동안은 안정적인 아르바이트를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편입을 했다 보니 여러 가지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걸렸고, 과제나 수업이 커뮤니티 칼리지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얇아진 지갑만큼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는데, 아시안 게토 (Asian Ghetto)라고 불리는 푸드코트와 학교 주변 몇 개의 식당들은 한 끼 가격에 내가 두 끼를 먹을 만한 식사량을 제공했으니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스티브 코리안 바비큐(Steve's Korean BBQ)라는 맛보단 양으로 승부하는 한국 식당과 그 옆에 타이 베질 (Thai Basil)이라는 태국 식당은 내 단골집이었다. (Fun fact - 미국은 투고(To-go) 박스라고 해서 식당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싸가는 것이 보편화되어있다. 모든 식당에서 가능하다고 보면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한국처럼 음식 낭비하느니 이렇게 싸가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지 않나 싶다.)

아르바이트를 찾아 방황하던 중 학교에서 발견한 꿀 효율의 아르바이트는 바로 특정 연구에 매주 실험 대상으로 참여하는 일이 었는데 시간 대비 돈벌이가 아주 좋았다. 역시 리서치 스쿨답게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실험들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몸을 써야 되는 실험은 아니었고 대부분은 사람의 심리와 관련된 실험이나 지성 또는 순발력을 써야 하는 류의 실험이 많았다. 한 세션당 1시간에서 1시간 반을 참여하면 $15불 내지 $20불을 벌 수 있었으니 나에게는 공강 시간에 할 수 있는 아주 효율 좋은 아르바이트였다.



UC 버클리 중앙도서관 (Doe library)과 시계탑 (Campanile)




다양성 (Diversity)이라는 말이 있다. 캘리포니아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시하고 또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아무래도 다문화 다인종으로 돌아가는 나라이다 보니 학교, 직장, 각종 단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다양성을 중요시하는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늘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한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Diversity라는 말은 인종, 성별, 나이의 다양성보다도 삶의 경험의 다양성을 지칭하는 의미로서 더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버클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Diversity를 굉장히 중요시했는데, 여러 나라의 학생들과 수많은 인종들과 함께 어울리는 경험은 내 이후의 미국 생활에 사실 큰 밑거름이 되었다. 부작용이 있다면 단편적인 경험들로 인해서 어떤 한 인종에 대해 선입견(Stereotype)이 생기기도 한다는 점이다. (Fun fact - 사실 버클리는 동양인 학생들의 비중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동양인으로서 마이너리티가 아닌 시간이 있을 줄은 몰랐었다.)


Fiat lux : Let there be light


UC(University of California) 시스템의 모토(Motto)로도 알려진 이 말이 언제부터, 왜 모토가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버클리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출입하는 남쪽 입구인 새더 게이트 (Sather gate)에 보면 위쪽 문양에 라틴어인 'Fiat Lux'라고 양각되어 있고 UC 학교 로고에 자세히 보면 영어로 'Let there be light'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성경에서 나온 것을 따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학교 다닐 때 이 문구가 참 맘에 들었었다. 뭔가 '너의 미래에 빛이 있으라'라고 하는 메시지 같았달까.



새더 게이트 (Sather Gate) - 청동색 학교의 남문인데 위쪽 별모양 아래 'FIAT LUX'라고 양각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그 빛은 쉽게 비춰주지 않았고 닥쳐온 현실은 실로 막막했다. 편입생의 시간은 두배로 빠르게 지나갔다. 캠퍼스의 경사진 언덕들을 오르내리는 걸음이 더 이상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무렵 이미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접어들며 마음이 매우 조급해졌다. 취업준비는 4학년이 되면서 어영부영 시작하기는 했었는데 하루를 쪼개고 쪼개도 시간이 모자랐다. 부랴 부랴 지원했던 정말 가고 싶었던 회계법인의 여름 인턴쉽 면접에서는 너무나도 부족한 준비로 이미 낙방을 하고 난 뒤였다. 그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잡다한 서류업무와 식당일을 병행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내 재정 상황상 그 일을 일주일에 열댓 시간 정도는 해야만 했다. 거기에다가 매일 꾸준히 해야 하는 빡세디 빡센 4학년 전공수업 스터디와 더불어 (당시에는 작았으나) 지금은 꽤나 규모가 커진 한인 학생회 회장직, 그리고 피 끓는 청춘답게 연애질마저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몸이 두 개가 있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졸업이 다가올수록 취업을 위한 스트레스 지수는 올라가고 있었고, 내 인생에서 암흑과 같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왠지 모르게 직감한 시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 상황마저 최악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무얼 해도 헛발질하는 느낌이었고, 취업준비라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힘들었던 일들조차도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중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뭔가 닿을 수 없는 아련함 같다면 대학 생활의 추억은 풋풋한 싱그러운 초록 같은 느낌이다. 많은 일들이 성인이라는 새 이름표 아래 처음 겪는 일들이었고, 뭔가 항상 어설펐지만 그것조차도 너무나도 신났던 시절, 지갑은 한없이 가난했지만 잴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었던 시절. 어른이라고 우기고 싶었지만 아직도 그저 소년의 순수함이 머물러있던 나의 이십 대. 대학 시절을 떠오르면 왠지 모를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좋은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축복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쓰는 글들은 그저 내 왜곡된 기억의 파편들 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조작되기 쉽고 많은 부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남겨지기도 쉬우니까.. 아무려면 어떠랴.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버클리라는 하나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나는 내 결핍들을 수많은 경험들로 채울 수 있었다. 부족함이 충만함이 된 감사한 시간들이다.  





카페 스트라다 (Caffe Strada) - 버클리 캠퍼스 바로 길건너 위치했던 이 고즈넉한 카페는 나의 많은 추억이 자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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