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독일교환학생
나는 학교를 통학할 때 항상 4호선을 타고 통학했다. 그래서 웬만한 4호선의 역은 대부분 내려본 것 같다. 그러나 동작역, 서울의 중심에 있고 국립현충원이라는 상징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그 역에 내려본 기억은 한강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탈 때 말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리적으로 국립현충원은 서울의 빌딩 숲 속에서 숨겨져 있었고 인식상으로도 뉴스에서 보는 공적인 장소로서 엄숙한 느낌 속에서 선뜻 가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기 어려웠다.
이미 연수원에 입교한 5급 공채 합격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5급 공채 합격자들은 연수원 입소 전에 아래 사진과 같이 현충원을 들려 참배를 한 뒤에 연수원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그런 일정을 처음 들었을 때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현충원을 방문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왠지 설레고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식적, 상징적으로 활용, 인식되고 우리 일상과는 괴리가 느껴지는 현충원이 바람직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현충원은 어떤 의미 일까. 숭고하고 존경해야 하고 그 뜻을 기려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긍정적인 의미들이지만 이런 무거운 의미들 속에서 과연 시민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을지는 재고해봐야 한다. 실제로 국립묘지는 사람들의 방문이 있어야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지는 곳, 미래 공직자들이 상징적으로 방문하는 곳을 넘어서는 공직과 관련 없는 시민들이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스코틀랜드 군인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에든버러성에 들어가기 전부터 죽은 스코틀랜드 부사관(NCO)과 장교(CO)들의 이름이 적힌 동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스코틀랜드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고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에든버러성에 들어가면, 군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고성'답게 군인들의 막사, 병원, 그리고 박물관으로 개조한 장소들이 많이 보였다. 성의 가장 중요하고 관광객이 붐비는 '운명의 돌'이 안치된 곳이자,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훗날 영국의 왕이 되는 제임스 2세를 출산한 곳, 그 바로 옆에는 역대 스코틀랜드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관이 설치되어 있다. 어찌 보면 스코틀랜드의 뿌리이자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의 가장 중심부에서 가장 거대하게 자리 잡은 것이 군인 추모관이라는 게 신기했다. 내부는 촬영불가라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그 웅장한 기운과 이전에 봤던 군사적 장소들, 역사와 오버랩되며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생각했던 스코틀랜드 군인들을 기리는 마음이 들게 하였다. 나에게 에든버러성은 메리여왕, 운명의 돌보다도 역사 속에서 죽은 스코틀랜드 군인들로 더 뇌리에 박혔다.
위 사진들은 흡사 그냥 공원의 한 부분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뒤를 돌아보면 아래와 같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포함한 유명 장교들의 묘지가 있는 군사박물관 단지, 앵발리드(Hôtel des Invalides)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알렉산드르 2세의 다리 앞이자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옆, 그리고 시민들이 놀 수 있는 넓은 잔디밭과 뒤에 죽은 군인들의 묘지가 있는 것이다. 이런 배치는 나 같은 프랑스 역사에 무지하다면 한없이 무지한 해외 관광객도 지나가다가 호기심에 한 번씩 들르게 된다. 또한 근처로 놀러 온 파리 시민들은 굳이 저 장소에 엄숙하게 들어가지 않더라도 항상 저 장소를 인지하며,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파리의 서쪽에 군인들을 위한 앵발리드가 있다면 파리의 동쪽에는 프랑스 출신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팡테옹(Panthéon)이 있다. 팡테옹은 파리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이자 라부아지에, 드가, 퀴리 부부, 샤르트르 등을 배출한 소르본 대학교와 경계가 모호하게 뒤섞여있다. 팡테옹에는 볼테르, 루소, 라그랑주, 위고, 퀴리 부부 등 약 80여 명만이 묻혀 있는데 이들 이외에 이름을 처음 들어본 분들도 다들 외교, 법, 수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족적을 남기신 분들이었다. 여기 묻힌 기라성 같은 위인들이 학생들에게 마치 '여기에 묻히려면 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그 앞의 팡테온 광장에 아무 데나 걸터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어서 외관만 보고 프랑스어를 읽지 못하면 그냥 학교의 박물관? 총장실처럼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팡테옹 위쪽의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는 문구를 번역해 보니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한다.'라는 웅장한 문구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웅장한 문구가 적힌 곳 앞에서 아무 데나 걸터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장면은 잘 상상이 안되었다. 그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니 건축물의 모습,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 광장 사람들의 분위기에서 엄숙함과 친밀함, 우리나라에서는 모순적일 것만 같았던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엄숙한 곳이 친밀할 수 있을까? 친밀한 곳에서 엄숙함을 느낄 수 있을까?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죽음에 관하여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엄숙하다. 그리고 그 엄숙함은 세대 간의 과도한 단절을 가져오고 시민들이 선대의 위인들을 생각하는 기회마저 줄여버린다. 에든버러와 파리를 보면 시민들이 자국의 위인들을 존경하면서도 그들과 친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변화하는 것 중에 뚜렷한 현상은 나이로 형성되는 강압적이고 엄숙한 위계가 약해지는 현상이다.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선진국의 시민인식을 가져야 한다. 선진국의 시민의식은 기존에 형성한 나이, 학력과 같은 가시적인 조건에 강압적인 위계질서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그 경험이나 태도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세대 간 경험과 지식의 순환이 보다 용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간의 세대 차이도 심하지만 죽은 이들과 현세대를 살아가는 이들 간의 세대 격차마저도 큰 것 같다. 죽음에 대해서도 과도한 위계와 엄숙함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고인, 위인을 존중할 수 있다면 역사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친밀하게 뿌리 깊은 역사의식과 동기부여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식 변화에 발맞춰 공간적, 지리적으로도 국립현충원, 전쟁기념관 등을 우리 삶 속에 좀 더 친숙하게, 가까이 두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