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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바 Nov 19. 2023

어린엘사는 어디로 갔을까:런던

늦깎이 독일 교환학생

교환학생을 온 지도 벌써 대략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20살 이후로 굵직굵직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대충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 교환학생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인간은 기억을 떠올릴 때 동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기억을 되새긴다고 한다. 교환학생에서는 내가 몇 장의 사진을 찍었을까? 



런던에서 프로즌 뮤지컬을 보았다. 왜 40대 아저씨가 봐도 감동받을 만한 뮤지컬인지 알 수 있었다. 무대 연출, 노래할 거 없이 좋았다. 레미제라블은 무대장치가 화려하지는 않아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민중들의 개성을 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면 프로즌은 화려한 무대장치들에 시선을 뺏겼다. 노래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고 중간중간 대사가 들어가 있었던 것도 뮤지컬에 문외한인 나에게 호흡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일부는 스토리가 유치하다고 하지만 엘사의 차가운 이성과 두려움을 따뜻한 감정으로 녹여낸 주제의식은 절대 가볍게 소비하고만 넘어갈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성인들도 좋아하는 뮤지컬이라 하더라도 프로즌을 보러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하는 뮤지컬을 만들기가 어려웠을 텐데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뮤지컬을 볼 때는 잘 몰랐는데 뮤지컬이 끝나자 어디 숨어있다 나온 것처럼 여기저기 어린 엘사들이 나타났다. 아마 오늘 엘사 옷을 입고 뮤지컬을 본 것이 평생 좋은 사진으로 아이들 머릿속에 남아 있겠지? 아니면 이런 여가 활동을 충분히 많이 즐기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 경험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으려나? 

어린 엘사들


우리나라에서 지금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할 2030 세대의 부모님들은 자유연애에 대한 관념이 약했다. 학창 시절에는 여고, 남고가 흔했고 남녀공학이더라도 남녀 분반인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어렸을 때부터 이성을 접할 기회는 적었고 '남녀침세부동석'을 외치며 성교육은 쉬쉬했었다. 성인이 돼서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고 나한테 맞는 사람을 고민한다기보다는 사회에서 정하는 결혼 적령기라는 나이의 압박에 등 떠밀려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자녀 역시 본인의 의사가 아닌 사회가 정하는 출산 적령기, 남아선호사상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사회 분위기 상 이혼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성에 대한 건설적인 학습 기회의 부재,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혼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인식은 결국 화목하지 않은 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인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이성에 대해 잘 알며, 나와 맞는 사람을 느긋하게 찾고 내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수의 자식을 낳아도 가정의 화목을 장담할 수 없는데 전자와 같은 상황에선 당연히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자녀 교육에 대한 과도한 몰입 역시 가정의 화목을 방해한다. 부부 서로 간 관심보다 자녀 교육에 대한 왜곡된 관심이 가정을 지배한다면 그만큼 서로에 대해 생각하고 서로를 사랑할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자녀 또한 사랑이 아닌 왜곡된 애정으로서 교육에 대한 강요를 해석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다. 이는 어린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유모차가 올라갈만한 버스도 없고,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도 타기 힘들며, 걸음마를 떼고 나서는 뛰어놀 공원도 변변치 않다. 

유모차 자전거가 심심치 않게 보이는 거리(네덜란드), 유모차가 당연히도 탈 수 있고 아무리 오래걸려도 기다려주는 버스(영국)


아이들은 뛰어놀고 싶고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원한다. 그리고 그런 화목한 가정 속에서 뛰놀며 지낸 아이는 자연스레 커서도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을까? 위에 언급한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볼 때, 현재 우리나라 2030의 가정이 대부분 화목하고, 2030 세대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을 거라고 가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런던 에어비앤비에서 아침을 먹다가 만난 호스트분은 인구과밀화 속에서 저출산을 통한 인구의 자연적 감소는 필연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럽 국가들처럼 인구감소의 연착륙이 가능할 조건이 매우 미흡하다. 저출산은 신혼부부만을 위한 대책, 어린아이를 위한 대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결국 학창 시절 남녀 교육부터 사회전반의 인프라 개선까지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대책이 필요한데 이게 가능할까? 이런 거시적인 담론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쉽다. 그러나 거시적인 담론일수록 그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생존을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단기적 복지정책, 이민자 유입이라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는 임시방편만이 난무할 것이다. 



0.7명, 저출산과 같은 위기는 엄청난 충격요법으로 이참에 정말 시민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는 '단절적 균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기회가 지나가면 우리 손으로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골든타임은 영영 놓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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