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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바 Jul 06. 2024

영수의 시각4

폭력적인 첫사랑

두려움과 자기편의적 단순화로 근본적인 문제에서 눈을 돌린다면 노력은 그냥 임시방편에 불과했고 사랑을 이유로 과하게 힘을 준 관계는 처참히 부서지기도 쉬웠다.


우리가 이별을 고했다. 여느 커플의 헤어짐에서 남자가 그렇듯, 영수는 갑작스러움에 당황했다. 그리고 우리의 무책임함에 분노했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한 결과 우리만큼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할만큼 좋아할 사람이 나타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영수는 우리의 외침을 직면하지 못했다. 


우리는 마지막에 영수에게 그말을 날카로운 칼로 갈아서 꽂았고, 그랬기에 영수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수가 우리를 잃고 싶지 않아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가장 가슴아프게 잃고 싶지 않아서, 두려움에 외면했던 우리가 가장 전하고 싶었던 말을. 우리의 고통이 전적으로 영수의 책임이라는 것을. 


영수가 가장 노래방에서 즐겨불렀던 노래는 10cm의 perfect라는 노래였다. 


어제는 아름답고


오늘은 지옥 같아


바늘처럼 따가운 빗물이 멈추지 않네


눈앞이 캄캄해져 볼 수 없고 숨도 못 쉰다더니


정말 그렇네


내가 널 괴롭혔지


나 땜에 짜증 났지?


난 손에 닿은 모든 것들을 망가 뜨렸지


비참한 끝을 앞둔 괴물처럼


나를 물리쳐야만


지루한 이야기가 끝나지


쓰잘데 없는 나를 제때 버리질 않았으니까


멀쩡한 너의 모든 게 엉망이 됐지


내가 없는 너는 이제야 모든 게 다 완벽해


내가 눈치가 빨랐다면 좋았는데


너를 생각하는 이 밤이 더럽게 구차해서


유치한 말을 밤새워 중얼거렸지


내가 없는 너는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해


내가 눈치가 빨랐다면 좀 나았을 텐데


이제 너는 문제없는 평화로운 밤을


어제는 아름답고


오늘은 지옥 같아.


영수는 본인은 유익한 사람이고 여자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항상 생각하며 살았고 그렇게 느끼게 노력하고 사랑했다. 그렇기에 이 노래를 불러도 영수는 남의 이야기로 생각했고 단지 영수가 평생 느껴보지 못할 만한 감정을 간접 경험하는 정도였다. 영수는 본인의 쓸모와 유익성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영수의 인생에서 남자친구로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힒듬이 모두 영수에 기반했다는 것은 자신의 역할을,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였고, 그것은 열심히 아파하고 노력해왔던 영수에게 견딜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기에 영수는 perfect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노력할수록 우리의 힘듦은 외면당했다. perfect의 주인공은 바로 상대의 힘듦을 직면하지 못하고 상대를 믿지 못해, 받아들이고 치유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영수였다.


영수에게 이 곡은 기타칠때 맨 처음 손가락을 풀던, 가장 좋아하던 곡이였다. 그리고 이 곡을 연주하며 영수는 서럽게도 펑펑 울었다.


취준생이였던 우리가 힘들었으면서도 계속 영수를 만났던 것은 영수가 유익해서가 아니였다. 영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우리는 그것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영수의 삶에는 멘토가 필요했었고 그의 삶에서 가장 필요했던 역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필요한 해주고 싶었다.


용기가 없는 사랑은 상대를 아프게만 할 뿐. 영수가 두려움에 놓지 못했던 손가락을 자르고 나간 우리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가 아팠던 것을 그 잘린 손가락을 보면서 영수는 뼈저리게 실감한다. 본인의 아픔은 아픔이 아니였다는 것을. 





영수의 시각5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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