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전업주부생활을 위해
전업주부가 된 지 3년이 되어간다.
회사의 권태주기처럼 전업주부 권태기가 온 것일까.
호르몬의 장난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피해의식 때문인지,
그 망할 놈이지만 끊어내지 못하는 sns 속의 화려한 생활과 비교되는 나의 모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참 구린 것 같은 요즘이다(표현이 올드한 것도 구리다)
나는 리틀포레스트의 삶만 살아도 마냥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항상 나는 소확행의 삶을 지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미 15년은 도시에서 자본의 맛과 사회적 인정의 맛을 본 나에게 그건 어쩌면 환상과 같은 것이었나 보다.
와중에 참 다행인 건,
지금의 나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엔, 사회에서 난다 긴다 하던 엄마들이
이 시대에 선택적으로 집에 있는 엄마를 하기 위해선
경제적인 상황은 차치하고,
아래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잘 해낼 자신이 있어야 되는 것 같다.
첫 번째, 멘털이 강해야 한다.
다른 이의 시선이나 말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도 나의 히스토리를 모른다.
유치원 등원버스를 같이 기다리는 할머니가 어떤 이유로 집에 있는 엄마가 되기로 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어느 날 “똑똑한 여자들은 그렇게 자신의 직업에 열중하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랑 노는 물이 다른 곳의 여자들은 그렇더라”라고 들리는 경험을 했다.
나에게 "너는 능력이 없어서 집에 있지"라고 이야기는 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가 불만이던 차에
타인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피해의식에 젖어 내 멘털은 너덜너덜해졌던 게 아닐까 싶다.
아마 멘털이 강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걸 이해 못 하지 않을까
두 번째,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남편이 회사를 가고 나면 오롯이 나 혼자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생긴다.
그런데 시간 관리를 못하면 그건 내 시간이 아니다.
무엇인가에 잡아먹힌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핸드폰 한번 잡으면 “벌써 아이가 올 시간이네?”라는 말을 해버리게 되니까.
직장인은 잠깐의 휴식시간에 동료들과 수다를 떨어도 월급이 나온다.
주부는 옆집 엄마와 잠깐 수다를 떠는 시간은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되는 것이다.
내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내 몫이다.
체력 관리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출퇴근에 대한 운동량도 없고 힘들면 누울 수 있는 침대가 있다.
여차하면 체력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숨 쉬는 것만큼 쉽다
세 번째, 인간관계에 있어 적극적이어야 한다
(극 I의 성향이 아닌 경우의 이야기다)
가끔은 지금! 당장! 나의 이야기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회사에 있는 친구들에게,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
어느 순간 하이에나처럼 전화번호를 뒤지는 나를 발견하고 서러운 느낌이 드는 어찌 초라하지 않았겠는가.
예전에 했던 사회생활에서 가끔 찾았던 단비 같았던 사람들과 어울렸던 기억, 맛집을 찾아갔던 내 생활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남편이 투덜투덜 대는 그 회식, 그 자리에서는 얼마나 웃고 떠들었겠는가.
중간에 전화 올 때의 분위기나 다녀와서 미주알고주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어느 날은 남편이 회사사람들과 주말에 골프가 잡혔다고 이야기했을 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주기적으로 만나던 친구가 이사를 가고, 유일하게 수다도 떠는 동네친구가 한달살이를 떠난 후,
2달 정도 주중에 내내 집에 있다가 주말에 아이 데리고 남편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그나마 외출의 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런 나를 몰라주는 남편이 너무 서운하기까지 했다.
이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그는 회사생활에 임신한 아내를 위해 가정일, 아이에도 신경 써야 하고 아내의 외출일정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이냐는 말이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스스로가 창피해서 남편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 내 생활에서의 작은 사회적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는 건 필요한 일이다.
물론 전업주부를 머리 터지게 고민할 때, 이런 것들을 간과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나는 내가 꽤 자기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자만했기 때문이다.
만약 3년 전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회사를 그만두기 전 3가지 중 2가지 정도는 미리 만들어두고 그만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괜히 나처럼 기상시간 5시 반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서 해야지 헤헤
이런 식의 순진해빠진 생각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줘야지.
나에게는
지나간 시간이야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다른 이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 보람된 일을 찾고
자기 관리를 잘하고, 스스로의 작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나야, 진짜 내가 매 순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