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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있지 May 22. 2024

아보카도 같은 우리가 되었으면

유치원 버스에서 아이가 내린다.

항상 쭈그리고 앉아 아이를 안아주고 오늘도 재미있었냐며, 엄마는 오늘도 로미가 너무 보고 싶었다며 애교를 부린다.

아이의 오늘의 유치원 생활이 궁금하다.

역시나 오늘도 유치원 이야기의 시작은 같은 반 친구 A의 이야기다.

“엄마, A가 오늘 로미가 입은 옷 안 예쁘대요 “

등원 준비할 때, 본인이 야심 차게 준비해서 입고 간 자유복이었는데 그 친구에게 어필이 실패한 모양이다

.



처음 로미가 아주 시무룩한 표정으로 A의 이야기를 했을 때는 나름 충격이었다.

요즘 아이들 빠르다, 빠르다 하더니 정말 빠르구나

아직 5살밖에 안 됐는데(심지어 네 돌 안된 친구도 있는 나이인데) 서로의 의상에 대해 신경 쓰고 평가를 한다고?

여자애들이라 세심해서 그런 건가?

나중에는 아니 어쩜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한 번은 로미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엄마, A가 꿈에서 나를 밀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그날 아침 A가 또 안 예쁘다고 하면 어떡하냐며, 서럽게 울며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한 번도 유치원을 가기 싫다고 한 적이 없는 아이인데,

예쁘디예쁜 내 새끼한테

이렇게 까지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이라니.

서럽게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분노가 올라왔다.

그날 나는 결국, 유치원 버스를 같이 타고 등원했다.


그날 이후, 아이의 공주템을 사기 시작했다.

일주일 5일 중 4일을 원복을 입고 등원하기 때문에, 액세서리, 신발 등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짧은 기장의 머리보다 훨씬 긴 파스텔톤의 리본핀을 형형색색으로 사고, 리본이며 꽃무늬가 난무하는 핑크계열의 양말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정엄마는 그날로 우리를 신발가게로 데리고 가서 번쩍번쩍 빛나는 구두를 두 켤레 사주셨다.

처음에는 이게 맞는 방법인지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고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기분을 망치고 오는 일이 없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한테도 상담 신청을 하고

아이들에게 전체적으로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도록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도 A의 이야기는 줄지 않았다.

당연히 이건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다섯 살 아이는 대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며 말을 할 수 없다.

일부러 우리 아이에게 상처를 주려고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닐 거다.

언제까지 선생님에게 상담을 하고

그 아이의 부모에게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정신 차리고 오은영박사님의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오은영 박사님을 좋아한다.

엄하지만 기초부터 제대로 알려주는 선생님의 느낌이라서 좋다.

(심지어 책에서 큰소리로 따라 읽어보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점도 좋다)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어른의 대처라고 한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가르쳐주느냐에 따라 그다음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아예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겨낼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주는 미묘한 감정적인 자극을 잘 버텨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가 부족한 부분이라 아이에게 이걸 알려주는 걸 놓칠 뻔했어요

어쩌면 내가 그 자극에 휘둘려 과잉반응을 한건 아니었을까.


중요한 건 내 아이의 회복탄력성이고 내면의 단단함이다.

아이가 충분히 그 상황에서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걸 받아들이는 힘.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 말이다.

아이가 열 살, 스무 살 커가면서 내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긴 인생을 생각한다면,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훈련시켜줘야 한다.

당장 그 소리를 안 듣게 하는 것은 아이를 나약하게 만들 뿐이다.




아이와 내가 아보카도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보카도는 후숙 할수록 겉의 과육은 부드러워진다.

속에 있는 씨는 칼로도 못 자를 정도로 크고 단단하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래 함께 한 사람들에게는 부드럽지만

내 안의 중심은 항상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 밤에도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아이에게 귓속말을 해줘야지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세상에서 제일 괜찮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릴 필요 없어

그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우리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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