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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SMIN Sep 21. 2024

상실의 시대

이야기와 서사가 사라져 가는 날의 독백 

이야기의 저장소

세상은 끝없이 많은 이야기로 넘쳐나지만,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기억으로, 그리고 다시 이야기로 전해지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공동의 기억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감정과 경험이 결합된 서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현대 사회의 이야기 저장소는 클라우드와 같은 거대한 가상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에 저장된 이야기는 그저 데이터일 뿐,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 필요할 때 검색을 통해 이야기를 찾을 수 있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자발적으로 의미를 키우며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정보는 언제든 가져올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맥락과 서사를 잃는다. 이야기들은 파편화되고, 그 파편들은 그저 검색어와 키워드로 태그 되고 분류될 뿐이다. 

서사가 제거된 이야기는 경험, 감정, 나와의 연결성 없이 단지 데이터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 수많은 이야기를 저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적 맥락이 사라진 이야기들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과거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공동체를 형성했다면, 오늘날의 이야기는 그저 소비되고 잊혀질 뿐이다. 


군중 속 외로움

디지털 시대, 네트워크의 시대에 우리는 연결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연결은 정말 의미 있는 것일까? 

우리는 맥락잃은 이야기를 소비하고, 남의 이야기를 화면속 스쳐 지나가는 정보 정도로만 대할 뿐이다. 이렇게 파편화된 이야기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의 서사적 힘이 사라지면, 이야기는 더 이상 우리를 하나로 묶지 못하고, 개별적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연대와 공감을 잃은 채 나와 ‘우리’의 경계를 상실한다. 소셜 미디어와 네트워크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그 연결은 언제든지 끊길 수 있는 지극히 약한 고리다. 서사가 없는 연결은 나와 무관한 그들만의 대화와 이며, 결국 현실에서는 고립감과 함께 깊은 외로움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통의 자유가 넘쳐나는 시대에 왜 우리는 이토록 소외감을 느끼는 걸까? 

디지털 플랫폼은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그것은 단지 소비를 기다리는 일종의 상품일 뿐, 공감과 연대와 위로의 의미를 담지는 못한다. 우리가 이야기에서 경험하고 싶었던 감정과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우리는 그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상실을 경험한다. 


자각

끊임없이 새롭게 제공되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기 어렵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과거 행적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정보들을 시스템을 통해 끊임없이 제공할 뿐이다. 마치 케이지에서 사육되고 있는 가축처럼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사료와 같은 정보를 시의적절하게 제공 받지만, 우리는 이 정보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과거에는 한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한 이야기가 나와 공명하며 내 삶에 의미를 더했지만, 이제는 많이 제공될 뿐 깊이 사유되지 못하므로 서사의 힘은 불행히도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자각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내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음식의 향과 풍미가 제거된 획일화된 사료를 제공 받듯이, 맥락과 의미 잃은 정보를 소비하기 위해 관리되고 있는 '소비자'가 될 뿐이다. 


이야기가 종이를 만나면 책이 되듯이, 이야기가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된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데이터가 사람을 만나 좀더 스마트해 질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나의 인생에 꿈을 더하지는 않는다. 서사가 제거된 현실에서, 이야기는 다시 살아나야 한다. 맥락과 서사를 가진 이야기는 우리가 느끼는 상실과 외로움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향유되는 범위까지가 진정한 공동체의 범위다. 




이야기(Narrative): 개인적 경험을 담고 있는 구체적이고 주관적인 서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이야기를 전달하고 구조화하는 방식, 현대 사회에서는 종종 상업적 도구로 변질됨.

서사(Epic or Narrative Discourse): 공동체적이고 역사적인 기억과 경험을 담는 더 큰 구조의 이야기, 현대 사회에서는 깊이와 의미를 잃고 위기를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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