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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유경 Nov 24. 2018

TV, 여자의 주름을 허(許)하라!

오유경의 방송 인사이트  

최근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6을 보다가 예상치 못한 통쾌한 장면에 박수까지 쳤습니다.

네플릭스의 첫 번째 오리지널 드라마로 엄청난 화제와 인기를 누린 정치음모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주인공 '프랭크 J 언더우드' 역을 맡은 케빈 스페이시가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난 후 시리즈 중단 위기를 맞았죠.

제작진의 고심 끝에 수정된 시즌 6은  '프랭크 J언더우드'의 부인이자 부통령인 '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가 사망한 남편을 대신해 대통령이 된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여성이 지위가 높아지는 순간  미모는 더 이상 무기가 아닌 장애가 되죠.

여성이라는 것만도 약점으로 작용하는데 미모까지 갖추면 실력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의심받게 됩니다.

'클레어 언더우드' 역시 대통령에 올랐으나 국민과 언론의 의심, 정치권의 불신, 특히 기존의 짜인 권력구도 속에서 허수아비 역할밖에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대통령직을 건 도박을 하게 되죠. 백악관의 사저에 틀어박혀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무능력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아군과 적군이 누구인지를 가려냅니다. 적군들은 클레어의 덫인 줄 모른 채 음모를 구체화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이는데 클레어는 이들이 한 데 모인 자리에 급습하여 현장에서 전원 사표를 명령합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예상하면서 봤는데요. 오염된 내각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어떤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킬까 가 궁금했지요.  꼬일 대로 꼬인 정치 음모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사람이냐 더 복잡하게 만들 사람이냐가 저의 관전 포인트였고요.


제대로 백악관을 장악한 클레어는 1라운드 KO패를 인정하고 협상을 하러 온 고교 동창이자 정적인 숙명의 라이벌  '다이안 레인(애넷 셰퍼드 역)'에게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보여 줄 게 있다면서 다이안 레인의 손을 이끌고 가서 직무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합니다  ‘나의 새로운 내각이예요’!’

순간 당연히 있어야 할 넥타이를 맨 중년의 남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고 100프로 여자로 구성된 클레어 내각의 여성 장관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바라봅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가 뒤통수치기의 명수인 거 아시죠? 이번에도 예상 밖의 장면을 연출했는데요. 다만 이번에는 뒤통수가 아닌 앞이마를 치며 감탄하게 만들었죠. 바로 이 장면이 시리즈 6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이자 케빈 스페이시가 없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생명력을 부여한 명장면입니다.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이 장면을 맞닥뜨린 저는 감탄사와 함께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네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디가드>


요즘 전 세계적인 미투 열풍으로 페미니즘이 강해지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뿐만 아니라 최근에 내놓은 네플릭스 오리지널 <보디가드>역시 이러한 흐름에 있습니다.

<보디가드>는 21세기 여성의 롤모델은 더 이상 신데렐라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여자 주인공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출세한 내무장관이고 남자 주인공은  잘생기고 신체 건강하나 참전용사로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연하의 보디가드입니다. '남강여약'이라는 익숙한 기존의 남녀 공식과는 정반대의 인물 설정이지요.

마초 영화라고 비난 받기도 하는  007 시리즈도 최근에는 여성 캐릭터가 변하여,  위기에 위기를 더해주는 그래서 남성을 더 영웅으로 만드는 기존 본드걸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한 해 화제를 모은 드라마 속의 여성 캐릭터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스티>의 김남주,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의 손예진, <미스터 선샤인> 김태리 등은 남성을 압도하거나 적어도 대등한 여성상을 보여주었어요.


드라마 속 멋진 여성 캐릭터에 푹 빠져 있다가 TV 채널을 돌리니 넥타이를 맨 중년의 남자 앵커와 미모의 젊은 여자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가 현실을 일깨워줍니다.
방송의 현실은 드라마 속 상황과는 매우 다릅니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메인 남자 앵커와 보조 여자 앵커의 구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경륜 있는 남자 앵커 옆에는 경륜이 요구되지 않는 여자 앵커가 앉아있습니다.  

여성 앵커는 여전히 꽃으로 소비되고 있지요.

방송국은 '시청자'의 탓으로 돌립니다. 과연 그럴까요?

드라마 시청자와  뉴스의 시청자는 다른 사람일까요?  
드라마는 상업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청자의 욕구를 잘 파악하여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저는 오히려 뉴스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쯤이면 여성의 주름도 '늙음'이 아닌 '경륜'으로 받아들여질까요?

드라마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실의 TV 속에서도 성숙하고 노련한 여성 앵커를 보고 싶지 않으세요?




KBS 아나운서 오유경

전 KBSKWAVE편집인/ KBSAV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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