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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Mar 05. 2019

아침을 함께 여는...

루키와의 소소한 루틴

나의 아침은 언제나 루키와 함께 시작된다.   그것은 루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가끔 예외적인 날도 있지만 매일 아침 7시에 어김없이 우리는 산책을 함께 나선다.   그건 몇 년 전부터 내가 정한 유일한 나의 아침 워킹에 루키를 끼워 넣은 것이다.   루키로 봐서도 밤새 참았던 화장실도 해결해야 하고 아침 공기도 맞이해야 하기에 더없이 좋은 ‘윈윈’의 계약이다.

기본적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우리의 단순한 루트는 짧게 돌아오는 30분 코스와 비교적 멀리 돌아오는 한 시간짜리 코스로 나뉘는데 그것은 순전히 나의 컨디션과 여유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루키로 봐서는 언제든 길면 길수록 좋다는 표정을 하지만 하늘이 두쪽이 나도 주인은 나고 루키는 개 이기에 어쩔 수 없이 루키는 내 결정에 따라야 한다.

비교적 아침형 인간인 나로서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쉬우나 매일 아침 옷을 입고 산책 준비를 할 때면 내 의지와의 타협을 보느라 시간이 걸린다.   그럴 때 결국 문을 박차고 나가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루키가 제공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심지어 가엾기까지 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는 루키는 나의 약한 의지를 콕 집어 자극한다.

그렇게 일단 집 밖을 나서게 되면 후회는 없다.   루키는 매일 거의 비슷한 루트를 걸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개 이기에 곳곳의 냄새를 맡으며 자신의 채취를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나 역시 매일 변하는 아침 하늘의 색깔을 감상하고 비슷한 시간에 마주치는 같은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의 아침 루틴은 계속된다.   난 우선 모닝커피 준비를 하고 루키는 인내심을 갖고 나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며 루키의 우유 그릇과 나의 우유 그릇에 우유를 붓는다.   나는 보통 시리얼을 함께 하고 루키는 그저 두세 스푼 정도의 양 만을 마신다.   개에게 우유는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지만 루키의 경우는 강아지 때부터 마셔온 아침 음료이다.   그다음은 아침식사이다.   물은 항상 새로 갈아줘야 하고 연어를 가지고 만든 꽤나 고급스러운 먹이를 정확한 분량을 덜어 담는다.   그리고 난 내려진 커피를 컵에 담고 소파에 앉는다.   사료를 입으로 옮기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여기까지가 루키와 내가 매일 아침 함께하는 아침 일상이다.   비가 오고나 겨울에 길이 얼어 도저히 걷기 힘들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매일 한결같이 반복하는 습관이다.   루키의 입장에서도 먼동이 트는 아침이면 생각나는 유일한 사람이 나이다.   아침에 내 방문을 박차고 들어 오는 루키의 눈이 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 저녁에는 다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사랑하는 애견이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그림이 그려져야 하겠지만  그런 나는 무시되고 뭐라도 끊임없이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아내가 루키의 유일한 마스터가 된다.   그나마 나는 루키의 아침을 담당하는 중요한 존재이기에 내가 부르면 오기라도 하지만 루키에 대해 딱히 규칙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우리 집 아이들은 개무시(?)  당하기가 일쑤이다.


루키와의 만남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나다에 처음 이민을 와서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 풍경을 접하면서도 우리 집에 개를 드리울 생각은 사실 없었다.   우연하게 아들의 축구경기를 보다가 그곳에 함께 온 친구네 강아지를 본 나는 한눈에 반해 버렸다.   셸티라는 품종의 이 강아지라면 키워보고 싶다는 얘기를 가족들과 나눈 후 우연한 기회에 셸티의 브리더를 찾아낼 수 있었다. 

새롭게 우리 가족으로 합류한 유망주라는 단순한 이유로 루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루키라는 이름이 발음도 애매하고 강아지 이름치곤 특이해서 매번 ‘록키’ 나 ‘쿠키’로 오해받곤 했지만 그렇다고 이름을 바꾸진 않았다.   루키는 처음부터 우리 가족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가족의 관찰대상이었다.   절대 먹여서는 안 될 음식을 가리고 강아지에게 필요한 운동과 배변 가리기 훈련 등을 해 나갔다.   일반적인 셸티는 귀가 굽어져 있지만 루키는 바로 서있다.   처음엔 접힌귀가 귀여워 보여 테이프 등을 이용하여 인위적인 성형을 시도했지만 루키는 루키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지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캐나다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동양의 이민자 가족이 된 루키에게는 다른 곳으로 입양된 형제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정환경이 주어졌다.   다문화 가정의 일원이 된 루키는 우선 다양한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앉아서 손을 내미는 단순한 행동에도 아이들의 언어와 엄마의 언어 그리고 아빠인 내가 구사하는 방법의 차이를 구별해 내야 했다.   말을 걸면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은 아마도 루키가 가진 최고의 매력 포인트 일 것이다.   정말로 생각은 하긴 하는 건지 모르지만 내가 얘기하면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모습이란 설명하기 힘든 감동이다.   

그래도 루키는 개 인지라 극복하거나 학습되지 않는 공포와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번개나 기차소리를 제일 무서워하고 우산을 싫어하며 발톱 깎기를 증오한다.   그리고 햇볕의 반사나 메아리의 원리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즉각 반응한다.   가끔 실수로 방에 놓아둔 음심 물이 루키의 간식으로 사라지는 날도 있지만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것은 십 초 정도 일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방탕아 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언제 들어왔는지 기척도 없이 어느새 내 곁에는 루키가 와서 앉아 있다.   아침 글쓰기를 마친후면 산책이 다음 일정인 것을 아는 루키는 나름 인내력을 가지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사실 나가기 싫지만 결국 나는 루키와의 약속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함없는 일상이 루키의 하루를 즐겁게 하고 나의 하루를 정돈시킬 것이다.

인간이 반려견을 키우는 것은 어쩌면 그 반려견으로 인해 키워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두 생명체가 교감하는 어딘가에 어쩌면 내가 찾는 인생의 모든 기쁨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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