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휴대폰이 안되는 포틀랜드 외곽의 산장에서 유성우 보기
아이도 어느덧 다섯살. 최근에는 천체와 관련한 다양한 책들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 소원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이루어진다고 엄마한테도 안 알려준다. 이번달은 미국 북서부에서 유성우를 보기 좋은 달. 8월 중순 주말이 피크라고 했다.
남편이 휴대폰으로 한 귀여운 캐빈의 링크를 보냈다. Tiny House 원룸 형태의 캐빈인데, 워싱턴주에 있는 MT. Adams 산중턱에 있어서 별들을 보기 좋은 곳이란다. 벙크베드 (2층침대)형식이라서 아이도 엄청 신나할 것 같고, 사진도 아기자기하고, 캠핑 보다 좀 더 손쉬워서 우리 가족이 앞으로 캠핑을 잘 즐길 수 있을 지 테스트하기에도 좋을 듯 했다.
왠일로 우리 남편이 내 취향에 맞는 곳을 골랐네, 하고 알아서 예약하라고 전권을 넘겼다.
한참 신나게 딸에게 다음 주말에 별보러 캐빈에 갈 거라고 이것저것 설명하는데, 남편이 씨익 웃으며 한마디한다.
"거기 인터넷 안된댄다."
"뭐라구?"
"휴대폰도 안터진대. 진정한 노마드 휴식을 지내고 오는 거지."
우와 너 이 얘기 하고 싶어서 얼마나 입이 간질댔겠냐.
"뭐랏????!!!!!!! 너 연쇄살인마가 그런데만 골라서 다니는거 알지. "
"안에 선으로 연결되는 전화는 있어."
"걔네가 바보냐? 그거 다 자르고 들어오지. 우리같은 가족이 첫번째 타깃이라고. 영화봐봐. 우리같은 사람이 첫 씬에서 죽으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구."
한참 남편과 농담과 구박이 섞인 이야기를 툭탁대며 하는 중인데 우리 딸은 한참 심각하게 고민중.
"엄마, 그럼 우리 구글한테 노래 틀어달라고 못해? 큰일이네" -딸무룩.
어쨌든 이틀 아니라 하루만 예약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우리 가정 이혼 위기.
정작 이 날 휴대폰이 필요 없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 엄청나게 아름다운 자연경관 앞에 모든 미디어 컨텐츠는 힘을 잃고 만다. 심지어 챙겨간 소설 책 한 줄도 읽지 못했다.
Getaway에서 운영하는 이곳 산장은 트레일도 따로 마련해두고, 각각의 산장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어서 서로의 사생활에 침범당하지 않으면서 자신들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곳이다.이번 여름 역시 지나치게 비가 오지 않아 산불 방지차원에서 안타깝게도 모닥불은 사용할 수 없지만(여름엔 마쉬멜로 못 구워먹어요) , 전기를 이용한 그릴이 밖에 놓여져 있어서 아쉬운대로 캠핑의 분위기는 맘껏 즐길 수 있다.
물론 Petfriendly. 우리 집 강아지 두부도 이 자연의 냄새를 맘껏 즐겼다. 아주 긴 목줄을 가져와서 야생동물따라가다 집 잃지 않도록 잘 묶어두어야 하지만.
예쁜 트레일을 따라 여기저기 걸었는데, 사슴 한마리가 여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보고. 해가 지고 나니 멀리 소울음부터 시작해서 올빼미, 그리고 알수 없는 야생동물의 목소리가............
일단, 우리 니코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여행용 천체망원경을 열어 렌즈 몇개를 확인해보고 (이렇게 정작 나와서 사용해보니 왜 비싼거 자꾸 사고 싶어지는지 알겠음....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포틀랜드도 공기가 좋아서 사실 집 뒷뜰에 앉아 있다보면 종종 별똥별이 보이기도 하는데, 역시 이렇게 산속으로 들어오니 도시의 빛들이 차단되어 별들이 쏟아질듯 가득하다.
몇 번은 우리가 잘못봤나 싶을 정도로, (혹시 어디서 축포를 올린거 아니야?) 밝게 떨어지는 유성을 보기도 하고, 너무 찰나로 짧게 떨어지는 유성도 보고, 각자 보는 위치에 따라 누구는 보고 누구는 못보는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좋은 호텔에서도 잘 못자는 예민한 나인데, 이렇게 실컷 피톤치드를 들이마시고, 모니터 대신 하늘을 관찰하다 이 좁디좁은 작은 캐빈에 들어왔는데 아침에 남편이 커핏물 끓이는 소리를 낼 때까지 꿀잠을 잤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
"나 이제, 휴대폰 안되는 캠핑장 가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다만, 휴대폰에 음악은 좀 다운로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