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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겔 Jun 06. 2021

친구 이야기

또는 친구 Y에게

"우리는 아직 뭘 바꿀 수 없는거지? 우리는 잘 지키고 따르면 되는거지?"

친구 Y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5월 27일 밤, 구의역 9-4번 승강장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있었다.


"술 먹었어?"

Y의 마음은 깊어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아픔을 깊게 담아두고 기억하기 위함일까. 술에 젖어 마음이 연해지면, Y의 깊은 마음속 아픔이 올라온다. 눈물 흘리고 있을 모습이 떠올라 농담 삼아 말을 던지긴 했으나 마음이 썼다. 내 일만큼이나 타인의 일에 진심이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Y는 자신의 아픔보다 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헌화하고 있었다.


"현실의 벽이 절실히 느껴지네"

Y와 함께 꿈을 키우고 응원하며 공부를 했었는데 내가 먼저 길에 올라섰다. 3년 후, 그도 이제 같은 길에 올라섰다.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르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막 연수를 시작한 처지인 것을 알지만, 많은 이들이 그때부터 느낀다. 거대한 포부를 안고 공부했다. 수많은 판례와 정치, 행정의 이론과 사례들을 보며 수 천, 수 만 번을 비판하고 고민했다. 우리는 바꿔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또 다르다. 상상했던 멋진 모습은 없다.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해서 고된 시간도 있고, 내 판단과 다른 선택들에 일이 싫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을까. 바꾼다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시간들이 흘러간다.


"무언가라도 바꿀 수 있을 거야"

나도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 지시한 이유는 물론 지시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바쁘며, 행간을 놓치는 경우는 허다하다. 나름 고민한 결과물이 무참히 무시받기도 하며, 상사의 질문 하나에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지기도 한다.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버티게 된다. 태초에 꾸었던 작은 꿈. 희미해지고 빛바랜, 같은 수식어가 아니라 사실은,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 모호하고 터무니없는 꿈이 맞는 그런 꿈 때문에 말이다.


모호하고 터무니없는 꿈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아주 당연한 것이다. 동굴 속에서 그림자를 본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버리지 못한다. 잘 몰랐다는 이유로 버리고 치워버리면 억울할 것 같아서.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전에는 잘 몰랐으니까 그렇다 치고, 이제 실체는 봐버렸고, 그러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거지? 다시 꿈에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뭐라도 해보고 티끌처럼 작은 의미라도 찾아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Y에게 "무언가라도 바꿀 수 있을 거야"라는 티끌처럼 작은 희망이 담긴 말을 한 것이다.


사실 Y도 내가 말한 것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스스로 다짐하고 싶어서 나에게 연락했던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작은 마음 믿고 지난 꿈을 부정하지 않되 다시 처음 된 마음으로 준비하며 인내해야 한다는 사실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도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고, Y의 연락은 큰 힘이었다. 업무에 허덕이다 날짜가 바뀌기 전에 가까스로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 날이었는데도 어깨가 가볍고 밤공기는 상쾌했다.


"조만간 봐, 격려주 사줄게"

"좋지, 안주는 내가 사드릴게"

무거운 마음과 진솔한 대화의 끝은 너와의 술 한잔이 간절하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상심을 달래주고, 희망을 확인시켜주며 응원해주는 사람은 언제나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도 많을 눈물 나고 힘 빠지는 날들 속에, 너 같은 이 여기도 있다며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힘이 되어줄 사람이 되겠고, 너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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