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에 있었던 메르스 사태가 종종 떠올랐다. 나는 단지 코로나 사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헌법 상의 대통령 탄핵 제도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각인시킨 지가 벌써 5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범죄 사실을 비롯한 여러 가지 논란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예상보다 빨리 치러졌다.
투표권이 없었던 시절 대선은 항상 추운 겨울에 했던 기억이 난다. 제16대 대선 때는 바람의 나라를 하며 등 뒤로 흘러나오는 개표방송을 본 기억이 난다. 제17대 대선 때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었고, 제18대 대선은 군대에서 투표를 했다. 몇 톤 짜리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군용 트럭을 타고 연천이나 동두천 어딘가의 마을회관 같은 곳을 갔던 기억이 나는데 군데군데 눈이 쌓여있었다. 그런데 제19대 대선을 1년가량 앞둔 시점, 전국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뒤덮였던 기억이 난다. 그 해 나는 1차 시험에서 불합격하고 유독 추운 봄과 여름을 보냈던 고시생이었다.
공교롭게도 2017년은 5급 공채 시험에 헌법 과목이 (다시) 도입되는 시점이었다. 헌법을 공부하면 의도치 않게 정의감 비슷한 것을 자극받게 된다. 헌법 과목을 공부하는 동안에는 권리와 의무, 민주주의와 권력구조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시기에는 무려 '헌법 제1조'를 따다 만든 노래도 길거리에서 흘러나왔다. 시대가 그러하여 헌법을 숨 쉬듯이 공부했다. 2017년 내 헌법 성적도 나쁘지 않아 무난히 '패스'를 득했고, 마침 운도 좋게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2차 시험을 준비하던 3월 초에 있었다. 경제학 3순환 첫 강을 듣고 쉬는 시간, 친한 친구가 핸드폰을 보여줬다. 만장일치로 탄핵 결정이 이뤄졌다. 탄핵 결정은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권력을 다시 민주적 절차로 회수한, 민주주의의 여러 가지 구동장치 중 하나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탄핵 결정의 당부를 떠나 상당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탄핵 결정은 꽤나 큰 정치적 효능감을 주었을 것이다. 전혀 관련성은 없겠지만, 나는 2차 시험 필수 과목인 정치학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고 그 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민주화된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향유하며 살고 있으나 평소에 쉽게 체감하기는 어렵다.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 지방선거 등 여러 차례의 투표권 행사 기회가 있으나 이는 이미 일상화되어 높은 수준의 효능감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고 본다. 민주화를 이룩한 세대는 물론이거니와 민주화 이후의 세대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설령 지지하던 후보가 선출 된다고 하더라도 대표로서, 혹은 대리인 내지 수임인으로서 유권자의 마음에 드는 활동만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소위 말하는 '정권 교체'가 선거 구호로 자주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모델이 가지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2017년 당시의 탄핵은 '획기적인 자극'이 되어 효능감을 끌어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결과는 더욱 효능감 낮은 민주주의로 직결되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100만큼의 효능감을 느꼈던 사람이 다시 50 수준의 효능감만을 경험한다면, 이전에는 50이 일상적인 수치였더라도 상대적인 만족감은 더 낮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우리 민주주의와 권력구조 상 지방선거와 총선도 한 제도이지만,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인만큼 대통령과 관련된 이벤트가 주는 자극은 급이 다른 효능감을 주었을 것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이벤트를 겪고 5년이 지나, 탄핵 정국 없는 대선이 10년 만에 돌아왔다.
나는 문재인 현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고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일을 하고 있다. 불과 5년 전, 제19대 대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현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는 여전히 고시생이었다. 그렇게 벌써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서울이 아닌 세종에 거주하고, 운동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세종청사에서 근무한다. 이제 어떤 대통령이 선출되든 최선의 국정운영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공직자로서 책무를 다 하면 된다. 내 방향을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권유하지 않으며 업무에 연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민주사회의 시민이자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정치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는 것 또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단편들을 통해서라도, 앞으로 내 책무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부쩍 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