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팔리는 향수는 이유가 있다?
으로 알려져 있는 ‘향수’. 내 개인적인 최초의 화장품으로도 의미가 있다. 수 년 전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간 사회의 쓴 맛을 조금씩 맛보고 있던 그 어느 즈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이미지’를 가꾸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특히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함께 했던 많은 여성 동료들 그리고 수많은 손님들 사이에서 나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향수를 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저렴한 가격대에 많이들 뿌리고 다니는 제품을 찾다가 결정했던 첫 모델은 Burburry의 ‘Week end for Men’이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나가는 향수니 첫 선택으로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원한 느낌의 향이 워낙 마음에 들었고 만족스러워서 연속으로 3병까지 구매했었을 정도.
그러다 어느 겨울에 Ferrari의 ‘Black’을 선물로 받게 된다. Week End의 시원함에 익숙했던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시원한 게 아니라 따뜻하게 퍼지는 향긋함. 그러면서도 어딘가 텁텁하고 진한 느낌. 코를 찌르는 강한 스멜.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향수에도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향이 나뉘어 있다는 것을.
혈기왕성했던 나의 치기 어린 젊음. 뜨거운 열정이 뿜어내는 시큰한 땀 내음 대신 이제 나이의 앞자리 숫자도 바뀌었으니 열정과 정열의 남자보다 향긋하고 시원 상쾌한 공기를 주위에 두른 달콤시크한 도시남자이고 싶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킨과 로션, 마스크 팩, 썬크림까지 피부와 케어에 신경을 쓴다. 이제 향기로 나의 이미지를 다시금 완성시킬 차례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향기는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멋있게 보일 수 있을까? 어떤 향수를 써야 여자들에게 ‘대리님 아니 오빠아 향기 너무 좋아 아잉’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여름에 맡고 싶은 향은 아마 코를 화사하게 자극하는 푸른 바다 해변이 떠오르는 쿨한 향기일 것이다. 풋풋하고 싱싱하고 청량감 있는 시워언 상쾌한 느낌. 여름 향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시트러스(Citrus)향을 고르라고 한다. 어륀지, 레몬, 라임, 자몽 등 감귤류의 향이 느껴지는 것들. 반대로 차가운 겨울에 어울리는 건 우디(Woody)한 향이라고들 말한다. 깊고 묵직한 듯 따뜻하고 진한 향취.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고 대중성 있는 제품을 택하는 게 가장 안전하겠지만 누구에게나 비슷한 향이 난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느껴진다며 살의를 꾹꾹 누르던 어느 여인처럼, 향기란 건 그 사람의 이미지 내지는 모든 걸 표현하는 매개가 될 테니 사람들이 좋아하면서도 조금 더 새롭고 더 독특한 걸 찾아보자. 버버리 위크엔드는 이제 그만 사자.
향수는 취향이 아닐까? 용량이나 브랜드에 따라 워낙 천차만별인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10만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5만원 내외의 기준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제품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발한 2가지 제품은 Lush Dirty Spray와 CK one Summer Edition 2017.
러쉬 더티 스프레이(LUSH DIRTY SPRAY)
미식축구부 주장인 Miker는 그 날의 시합을 끝마치고 부리나케 뛰어 락커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열쇠로 문을 열자마자 그는 커다란 눈을 질끈 감았다. “도대체 누구야! 어떤 놈이야! 잡히면 가만 안 둬!” 188cm의 장신에 85kg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가 포효하듯 소리쳤다. 마치 한 마리의 화난 맹수처럼.
며칠 전부터 그의 런닝 셔츠가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처음에는 어딘가에 흘리고 다녔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이건 명백한 절도다. 아무리 비싼 거라도 그렇지 남이 입던 런닝 셔츠를 지속적으로 훔치다니. 내가 그렇게 인기가 좋아서 그런가 싶다가도 이쯤 되면 나에 대한 도전이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봐, Miker!”
뒤를 돌아보니 Jane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 있다.
“뭐야, Jane. 또 시비 걸러 왔냐?”
“아니, 그럴 리가. 모두가 좋아하는 우리 학교 훈남 Miker한테 시비는. 무슨 소리야. 호호.”
그녀는 노란 단발 머리를 찰랑 찰랑 흔들거리며 깔깔거렸다.
“비꼬지마. 오늘 정말 열 받으니까. 할 말 없으면 저리 꺼져.”
“네 속옷이 없어지고 있다며?”
“너 알아, 누군지?”
“그건 모르지만 소문을 들었어. 1학년에 너를 아주 좋아하는 후배가 있다지? ”
“뭔 시덥잖은 소리야.”
“그런데 그 후배, 남자애라며? 호호호.”
“닥치고 저리 꺼져!”
“잘 해봐~! 호호호.”
친구만 아니었어도 한 대 시원하게 갈기는 건데. 그는 생각했다. 그를 존경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는 1학년 학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걸 이렇게 엮다니. 저 버섯 머리 여자애를 어떻게 한 방 먹여야 할지 고민이다.
그날 밤,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Miker는 불 꺼진 남자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스읍… 허어…”
거친 숨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Miker는 그 즉시 묘한 상황이라는 걸 눈치챘다.
“스읍… 허브… 하아… 민트…”
'아무리 이 시간 학교에 사람이 없기로서니 이런 데서? 도대체 누구야?' 평소의 Miker라면 피곤해서 신경도 안 쓰고 지나쳤겠지만 이 날은 이상하게도 꼭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숨 죽이며 몰래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힌 마지막 칸에서 신음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Miker는 고양이처럼 몰래 한 걸음씩 다가갔다. 미세한 문틈 사이로 누군가 혼자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뭐야 혼자였네. 별 변태 같은 놈 다 있군. 기분만 더러워졌어. 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려는 순간 그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달빛에 조금씩 비춰지는 노란 단발머리. 웅크려 앉아있는 손에는 그날 그가 락커에 넣어놓았던 네이비 색 런닝 셔츠가 들려 있었다.
이렇게나 강렬한 향,
LUSH DIRTY SPRAY
알싸한 청량감을 간직한 보디 스프레이. 오랜 친구였던 Jane이 은밀히 탐닉하고자 했던 Miker의 향은 분명 Lush Dirty Spray였을 터. 운동을 좋아하고 호쾌한 성격의 Miker에게 딱 어울리는 느낌의 스프레이다. 패키지의 생김새 덕분인지 차량용 세정제 같기도 하다. 이름도 희한하다. Dirty라니. 향수 그 이상의 강한 향으로 몸을 덮는다. 더럽게 강해서 Dirty인가? 땀 냄새까지도. 처음에는 코를 강하게 찌르는 뾰족한 박하사탕 혹은 치과의 소독약 냄새처럼 시큰하고 독하지만 여기에 익숙해지면 특유의 청량한 향에 마치 취하는 듯 중독되는 느낌이다. 일반적인 향수보다는 지속력이 길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스프레이 형태라서 부담 없이 뿌려댈 수 있는 점은 좋았다. 가격대에 비해 용량도 많은 편이라서 더욱. 가격은 200ml 기준 4만원선.
혹시 일본에 갈 일이 있을 때 무조건 사오도록 하자. 일본에서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특유의 독한 허브 향이 싫다면 최근에 나온 싱긋한 레몬향 제품을 추천한다. 다만 흰 옷에는 얼룩이 생길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뿌리자.
포인트 1 : 차량용 세정제 스프레이처럼 생겨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포인트 2 : 코를 강하게 푹푹 찌르는 상쾌 시큼한 향기.
포인트 3 : 민트+허브로 잡내를 강력하게 때려눕히는 듯한 향
포인트 4 : 누군가에게는 코를 틀어막거나 창문을 열어젖힐 정도로 적응하기 어려운 농도.
포인트 5 : 수영선수 박태환 씨가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면 이런 향이 나지 않을까.
포인트 6 : 안전핀(?)만 잘 챙긴다면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좋다. 유리병 향수는 무거운데 이건 가볍다.
캘빈 클라인 CK ONE SUMMER EDITION 2017
어느 건조한 여름 날. P씨의 하늘색 린넨 셔츠가 창문 바람에 나부낀다. 짙은 브라운으로 염색된 머리도 파도처럼 찰랑인다. 그의 시선은 품에 안긴 여인에게 향해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어딘가 사무적인 웃음기의 그가 한참 만에 입을 뗀다.
“사랑해요. 사모님.”
“그렇게 부르지 마. 이제 그냥 누나라고 해. 가끔은 반말도 좋구.”
“하하……”
인적이 드문 경기도 외곽 어느 카페 구석 자리에서 P씨와 한 여인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무엇도 두 사람을 방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웨이브 머리의 여인이 자신의 팔자 주름을 감추려는 듯 사내의 가슴팍에 얼굴을 더 깊이 파묻으며 말했다.
“난 자기 이 냄새가 너무 좋더라.”
“그러세요?”
“응, 상쾌하고 남자다워. 그리고 귀엽구.”
“그렇게 느끼셨다니 다행이네요.”
“과일처럼 달달하고, 진하고, 섹시해. 무슨 향수야?”
“CK one…… 있어요, 그런 거. 알려주면 뭐 주실래요?”
“음, 글쎄? 내가 줄 수 있는 게 뭘까? 돈?”
“돈 말고.”
“그럼?”
“……하하.”
“우리 자기,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누나도.”
“어머, 갑자기 훅 들어오네. 오호호……”
그대로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평화로운 시간. 그 정적을 깬 것은 카페 전속 가수의 시끄러운 노랫소리도, 옆 테이블의 전화기 벨소리도, 저 건너 테이블에 앉아있는 어머니 모임의 수다 소리도 아니었다. 땡그랑-랑- 차갑게 울리는, 카페 현관문에 달린 작은 종소리였다. 누군가 조용히 두 사람 뒤로 다가와 우뚝 선다. 어딘가 익숙한 향이 여인의 코를 맹렬하게 찌른다. 싸늘하다.
‘이 목욕탕 스킨 냄새… 음?’ 휘둥그래지는 여인의 두 눈에 비친 건 린넨 셔츠를 입은 P씨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이미지의 한 사람. 이를 악문 어느 50대 남성이 이마에 핏줄을 세운 채 붉게 상기된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뭐야 지금, 뭐야 이게, 누구야? 어?”
“여… 여보…”
“……이 여편네가!”
이렇게 치명적인 향. 일탈과 성숙 사이.
CK ONE SUMMER EDITION 2017
CK의 향수 중에서 좋은 평이 많은 CK one 시리즈. 수염을 시크하게 짧게 치고 서글서글한 눈매로 하늘을 응시하는 외국 남성 모델이 떠오르는 향이다. 린넨 셔츠를 입은 P씨에게 잘 어울린다. 부드러움 속에 숨어있는 카리스마. 달달한 귀여움과 섹시함을 함께 갖춘 그 매력. 어디에서 그 누구와도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별한 힘을 줄 것 같은 묘한 파워가 있다. CK의 감각적인 로고가 태양처럼 떠오르는 패턴 위에 붉게 새겨져 있다. 패키지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파란 하늘에 해가 중천일 때까지 밤새 계속되는 흥겨운 파티가 컨셉이라는 향수. 고운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강렬한 태양빛과도 같은, 뜨거운 정열과 바람의 시원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싱싱한 레몬과 오이 향이 섞여 있고 어딘가 이국적인 멋도 느껴진다. 100ml 기준으로 가격은 4만2천원.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포인트 1 : 시원하게 생긴 패키지와 향수병
포인트 2 :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욱일기가 생각나는 병 뒷면 패턴 디자인.
포인트 3 : CK one 시리즈 특유의 쾌남 이미지
포인트 4 : 배우 이서진 씨의 땀에서 이런 향이 나지 않을까?
포인트 5 : 분무기에 뚜껑이 없어서 가방에 넣어 다니기가 위험하다.
참고로 2가지 향수에 대한 내 주위 여성분들의 평은 다음과 같았다.
“웁… 너무 독해요.” (Lush Dirty Spray)
“저는 나쁘지 않아요. 근데 좋지도 않아요.” (Lush Dirty Spray)
“킁킁… 향이 싫진 않은데 너무 많이 뿌리신 거 같아요.” (CK one Summer Edition 2017)
“…… (관심 없음)” (CK one Summer Edition 2017)
그래. 향수는 자기 만족이다. 내 향기는 내가 제일 많이 맡는다. 나는 향기 나는 도시남자. 나는 나를 사랑한다. 다만 너무 많이 뿌려대지만 말자. 몇 달 후 밤바람이 차가워질 때쯤엔 겨울 향수를 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