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알뜰살뜰하고 경제관념이 잘 형성된 사람이라면 중고거래에 모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쓰던 물건을 팔거나 손 탄 물건을 사는 일에 거부감이 있느냐 아니냐 하는 단순한 차원의 얘기다.
(허락 없이 등장시켜 좀 미안하지만) 친한 후배에게서 넷플릭스로 <곤도 마리에-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뒤 대대적으로 집을 정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입지 않는 옷이며 읽지 않는 책을 끄집어내어 전부 버리거나 팔았는데, 한 달에 걸쳐 정리를 끝내고 나니 인생에 대한 통제감이 고양되고 우울감이 사라졌다고 했다. 나도 속 시끄러운 일이 많던 무렵이라 귀가 솔깃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취업하고서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어학연수 간 직원 부부의 집에서 1년간 관리인 겸 살았고, 잠깐 본가에 들어갔다가 충남 아산으로 발령을 냈다. 아산에서는 빈방 한 칸을 관사로 받았는데, 세탁기며 에어컨 따위는 이럭저럭 없이도 지낼 수 있었으나 냉장고 없는 삶은 견딜 수가 없었다. 중고매장에서 십이만 원을 주고 투 도어 냉장고를 구해 한동안 잘 썼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며 다른 직원에게 넘겨주기로 했으나 그가 약속한 날짜에 냉장고를 옮겨가지 않아서 성가신 일을 겪었다. 어쨌거나.
정리를 시작하고 다큐멘터리에서 곤도 마리에가 소개한 대로 옷-책-서류-소품 순서로 ‘설레는 물건’과 ‘설레지 않는 물건’을 분류했다. 쓸만한 건 당근마켓에서 팔아보라고 후배가 제안하기에, ‘설레지 않’지만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을 모아서 공들여 사진을 찍고 소개를 달아 판매글을 올렸다. 치수를 잘못 선택해서 한 번도 못 신은 구두, 어깨를 다친 뒤로는 쓸 수 없는 푸시업 바, 매주 당직 근무를 하던 때 샀던 드라이 샴푸, 세탁이 번거로워 몇 번 안 입은 레이스 원피스 등등.
나로서는 설레지 않으나 다른 사람이 소중히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물건을 한 달 동안 스물아홉 개 떠나보내고 이십 일만 육천 원을 손에 쥐었다. 후배에게 자랑스레 이야기했더니 “언니, 살 때는 이백만 원도 더 썼을 거예요.”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