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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나 Jul 27. 2021

어쩐지 소중한 것을 잃은 기분이야

모든 경찰관은 처음 임용될 때 개인별로 시리얼 넘버가 새겨진 수갑을 하나씩 받는다. 공용으로 사용하며 무기고에 보관하는 권총과는 다르다. 다들 잘 모르셨죠?


십이만 육천 명의 경찰관이 지난 삼 년(2017년부터 2020년 8월까지) 간 분실한 수갑은 총 삼백육십사 개. 삼백육십사 나누기 삼 쩜 육육 나누기 십이만 육천은 영 쩜 영 영 영칠 구. 말하자면 올 한해 내가 수갑을 잃어버릴 확률은 영 쩜 영칠 퍼센트 정도다. 우리가 아무리 소중히 여겨마지않아도 종종 사라져버리는 물건들, 가령 지갑이나 휴대전화나 뭐 그런 것들보다는 잘 관리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 잠깐만, 그게 그렇다고 넘어가서는 안 되지.”라고 한다면, 물론 잃어버린 수갑은 악용되었을 때 문제가 있다. 경찰장구 사용에 대한 책임감이 해이해졌다는 방증이라 지적해도 맞는 말이다.


그런고로 최근에 수갑을 지급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임용될 때 지급된 수갑을 퇴직할 때까지 각자가 사용하고 보관했지만, 이제는 지정된 수갑 사용부서에 근무하는 경찰관이 비사용 부서로 옮기게 되면 수갑을 반납해야 한다. 나처럼 일 년 내내 수갑 케이스 열어볼 일 한 번 없는 사람이 수갑 잃어버릴 위험을 줄이는 데에 확실히 효과가 있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듯 득의양양한 기세로 수갑을 채워본 기억이 없다. 수갑의 톱니 날을 손목에 대고 세게 누르면 한 바퀴 홱 돌아서 철컥 잠긴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느냐마는, ‘꽤나 아프겠지….’하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언젠가의 짝꿍은 나한테 “그렇게 수갑을 곱게 ‘채워드리는’ 경우가 어딨냐?”라고 타박한 적도 있다.


사용하기에 서름서름하고 보관하기도 염려스러운 수갑을 반납하고 나니 앓던 이 뽑은 마냥 후련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만은 않다고 확실히 말하고 싶다. 오히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수갑이란 경찰관의 상징적인 아이템이 아닌가.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나 비전의 마인드스톤, 또는 토르의 묠니르 같은. 그런 물건을 하루아침에 내놓으라니 비통하다!라고 해봐야, 막상 수사나 지역경찰처럼 수갑 사용부서로 옮기면 ‘내가 왜 이 짓을 또 하겠다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별달리 쓸 구석이 없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더는 수갑을 가지고 있지 않다-수사를 할 기회가 없겠다고 생각하니 슬퍼진다. 아아, 나는 연차가 쌓였고 세상도 많이 바뀌었는데, 가진 물건과 선택할 수 있는 커리어는 오히려 줄어들었네.


수갑 이야기를 한참 했지만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특별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지 않은 길’ 생각에 마음 한편이 서늘해진 경험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어쨌거나 모든 게 나름의 의미가 있겠죠. 우리 모두 지금 잘 하고 있어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스테이 스트롱. 우리존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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