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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Jul 17. 2022

마법의 선배

소원을 말해봐

"선배! 저 OO노트북 샀어요."


"어디 봐봐. 성능 좀 보자."


원격 조정 프로그램으로 멀리 떨어져서도 내 노트북 사양을 자기 앞에 있는 것인 양 능숙히 체크한다.


"괜찮은 걸로 잘 샀네. 프로그램은 있고?"


"아니요. 이제 구해야죠."


"그럼 내가 가서 이것저것 설치해 줄게. 이번 주말에 서울 갈게."


선배는 대학시절부터 이런 걸 잘해줬다. 그때도 컴퓨터 문제가 생기면 선배를 호출했다. 결혼한 후론 컴퓨터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했는데 엄청난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전 남편은 문제가 생기면 내게 물어올 정도로 컴퓨터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흑기사가 출연하다니.


내 보금자리에 선배를 들이는 일은 마치 '무혈입성', 그간 쌓아 놓았던 신뢰를 바탕으로 쉽사리 이뤄졌다. 대학생 때도 선배에게 한번 집밥을 해 준 적이 있고 난 선배 자취방에서 순전히 '낮잠'만 자고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스파크가 없었다. 이번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다.


"선배 오면 먹고 싶은 거 해줄게요. 뭐 먹고 싶어요."


"응 나는 안 가려. 제육볶음? 그 정도면 최고지."


드디어 토요일, 선배가 오기 전 제육볶음 재료들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일 끝나고 오후에서야 출발한 선배는 저녁시간이 돼서야 도착했다. 저녁도 휴게소에서 해결해야 할 정도로 길이 막혔더랬다. 오자마자 늦은 시간 피곤할 텐데 바로 컴퓨터 체크부터 해 줬다. 노트북은 물론이고 주로 쓰는 데스크톱까지. 어떤 걸 업그레이드해야 컴퓨터를 새로 사지 않고 더 오래 쓸 수 있을지 알아봐 주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얘기만 주야장천. 선배의 잠자리는 내가 일하는 작은방에 마련해 줬고 난 안방에서 잤다. 아무 일도 없었다. 선배를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사람을 믿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선배에게 제육볶음을 대접할 수 있게 됐다. 


"어제는 밤이라 잘 몰랐는데 아침에 환하게 보니까 집이 고칠 곳이 좀 많긴 하구나." 


선배는 내가 자각하지도 못하고 그냥 살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고장 나서 빠져있는 문고리, 자꾸 떨어지는 샤워기 고정대, 컴퓨터 속에 쌓인 먼지까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며 다이소에서 먼지 제거기부터 사 왔다. 난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컴퓨터에 분사하니 먼지가 날아가는 게 눈으로 보였다.


"지금 외장하드에서 바로 작업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작업은 C드라이브에서 하고, 드라이브를 나눠서 D드라이브에다가도 저장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외장하드에 옮기는 방식으로 나는 하거든. 그게 작업도 더 빠르고 저장하기에도 안전할 거야. 컴퓨터 사양은 보니까 괜찮네, 오래 쓰려면 램을 추가하면 되겠어. 내가 램 추가해줄게. 48 램이면 작업하기 훨씬 수월할 거야."


무슨 소리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고마운 소리인 건 분명했다. 좀 많이 고마워서, 좀 많이 뻘쭘해졌다. 노트북에도 각종 필요한 프로그램이 빠른 속도로 깔리기 시작했다. 혼자 하려면 하루를 꼬박 잡아먹어도 원활히 끝내리라 자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해치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선배의 뒷모습이 무슨 산신령 같아 보였더랬다.


며칠 뒤엔 선배로부터 문고리 색상과 샤워기 거치대 상품 페이지 링크가 왔다.


"무슨 색이 마음에 들어?"


선배는 기어코 다음 주? 다다음 주?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집을 고치러 재 방문했다. 가만히 앉아서 문고리가 깔끔하게 교체되고, 샤워기 거치대가 붙고, 램이 확장되는 마법을 구경했다. 이상하다. 왜 고장 난 문고리를 진작 고칠 생각을 못했을까. 이혼 전부터 문고리는 고장 나 있었다. 나도 남편도 고칠 생각을 안 했다. 전 남편에게 문고리를 고쳐달라고 말해야겠단 생각도 전혀 안 했다. 왜 그랬을까? 그러고 보면 뭔가 고장 났을 때 상의해서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냥 두거나 내가 고민하고 인터넷 써칭을 해서 고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내 행동 패턴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전 남편의 방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가끔 밥을 같이 먹기도 했었기에 그가 와서 내가 위치를 옮겨 놓은 책상에서 선이 어지럽게 엉켜 있는 걸 봤다. 난 선을 정리하느라 고전 중이었는데 그가 오더니 너무 쉽게 선을 깔끔히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을 너무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에게 물어보고 의지해도 좋았을 텐데. 문고리가 불편하다고 고쳐봐 달라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내가 그를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미안해진다. '좀 해줘'라는 말 한마디면 많은 게 달라졌을까. 그도 나도 불편한 것에 기어코 적응해 버리는 인간들이어서였을까.


선배의 친절은 내게 갖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 든든함. 이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뻘쭘함, 어색함. 

내가 이런 친절을 받아도 되는 거야? 하고 물음을 던지면서도 뒤돌아서서 짓게 되는 미소. 이런 기분이 낯설면서도 기분 좋았다. 


나, 의지해 봐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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