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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은도 Feb 27. 2023

영혼과 육신의 괴리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얼마 전 고모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서 간만에 친척들이 다 모였다. 오랜만에 전부 모아놓고 보니 집안 어른들이 이젠 너무 나이 들어버려서 시간 가는 게 아깝다. 잡아두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좋은 것이지만 필히 흘러가 버리니 무상하다. 쇠퇴한 기력이 모레 알처럼 자꾸만 흩어지는 게 눈으로 확인돼서 고개를 돌리고 만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지만, 이 순간의 감정일 뿐, 내 일상으로 돌아오면 난 나만의 일상과 문제들에 파묻혀 다시금 내 세계로 가라앉는다.

내 세계 또한 이제 40년이 되어가서 곳곳에 세월이 주름주름 엮여 있고, 꽤 복잡스러우며 보수할 구석이 많은 부족함으로 점철된 곳인지라, 내 세계에 온전히 있다 보면 좀처럼 밖으로 나아갈 기력이나 의지가 피어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자기애이고, 어찌 보면 용기가 부족하고, 어찌 보면 게을러서 난 나의 세계에서 나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내 나이쯤 되는 이에게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사항들이 주문서처럼 내 앞에 떨어질 때가 있다. 주문대로 그럴듯한 40년 숙성된 이의 자세를 선보이지 못한다 느낀다. 그래서 늘 초라하고 늘 주눅 들지만,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20대 영혼이 탑재되어 있다고 농담처럼 기대치를 무산시키려는 얕은수를 몸부림친다.    

      

있는 그대로의 어리숙한 내가 좋다고, 이게 나라고 제법 당당한 생각을 하다가도, 역시 [어른스러운] 사람, 나이 그대로 착실히 차곡차곡 알맞게 쌓아 올린 현명한 인간에게 경외감과 열등감, 어쩔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가.        

  

매일 거울을 보며 찬찬히, 그사이 새로 늘어난 주름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더 깊이 파인 부분들을 확인하며 내 영혼이 얼마나 내 육신과 괴리되어 있는가를 가늠해 본다. 내 영혼이 얼마나 빠르게 달려야 내 육신에 와닿을 수 있을까. 걷지 말고 뛰어라. 뛰지 말고 날아다오 내 영혼아.    

      

뒷산을 산책하며 마주치는 어르신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 몸에는 또 어떤 생생하고 파릇한 숙성되지 않은, 또는 못한 영혼이 담겨 있을까. 얼마나 많은 나이 든 이들이 나와 같이 낡은 몸에 익지 못한 생각을 담고 살아갈까. 아직도 서툴고 새로운 게 많은, 알아가야 할 것이 산재한 영혼들이 쇠한 몸에 갇혀 하루를 보낼까. 막상 저 할머니, 막상 이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면 우리의 영혼엔 아주 미세한 시간 차이만 존재하지 않을까. 나와 비슷한 영혼과 마주하지 않을까. 그러면 그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철저히 울어버릴 것 같다. 야무지게 울어버릴 것 같다.     


당신도 나와 같군요… 당신도 나와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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