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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여사 Jan 22. 2019

잔소리가 신나는 사람은 없다

팀원에게 남편에게 지적질 3대 포인트

1.

아침 7시 반. 20대 팀원이 오늘은 공항에 다녀와야 하니 오후에 출근하겠다는 슬랙을 날렸다. 순간 이 슬랙이 과연 진정 오늘 아침에 온 것이 맞나 시간까지 재확인하고 나서야 한숨. 몸이 아파서 반차나 휴가를 쓰는 것이 아닌, 사전 고지가 가능한 근태 관련 사항을 전날도 아닌 아침에 메신저로 날린 것에 기분이 상했다. 안 그래도 팀원 하나가 결혼 휴가 중이라 이미 빈자리가 있었고, 팀원이 많지 않으니 누군가 휴가 중에는 휴가를 쓰지 말아 달라고 진작부터 말해온 터였다. 웬만하면 '알겠다' 대답하고 마는데 이번에는 이런 건 전날 말하라고 한마디 하고 말았다.


2.

팀원에게 코멘트할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한다. 이건 내가 팀장이라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아니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말해서 서로 시간만 낭비되는 말이라면 안 하려 노력한다. 팀원 시절에는 팀장에게 듣는 한마디 한마디에 바로 반응하는 편이었기에 '내가 팀장이 되면 여러 번 생각하고 말해야지' 다짐했고, 결혼 후엔 사람이 바뀌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소 체험했기에 이 말을 안 하면 내가 화병으로 죽을 것 같을 때를 빼고는 참으려 애썼다. 물론 애써서 다 되는 건 아니었지만.


3.

잔소리를 네이버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면 '쓸데없이 자질 구제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이라고 정의한다. 앞이건 뒤건 부정적 의미만 가득한 정의를 보고 있노라면 '아 역시 잔소리쟁이가 되긴 싫어' 온몸으로 밀어내고 싶은 마음만 가득.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서로서로 생각한 바를 이야기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문제점에 대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대화를 해야 하는 사회인이기에 잔소리 느낌 적은 코멘트를 하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잔소리 건 충고 건 코멘트 건 뭐,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4.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는 지적질의 3대 포인트는 '요점만 간단히, 이건에 대해서만, 바로 주의 환기'다. 남편에게 7년 가까이 프로 잔소리 퍼붓러로 살아온 경험치 덕분에 포인트만 막 100개 이상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바로 그러한 마음가짐이야말로 잔소리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주요 요소란 걸 알기에, 요점만 간단히 밑줄 쫙. 잔소리라는 건, 필 받으면 이번 건은 물론 어제 그제 한 달 전 10년 전까지 바로 시간 이동하며 무시무시한 무한 확장이 가능한 특성을 가졌지만, 그 특성을 살리는 순간 상대방은 귀를 닫고 '너는 그저 잔소리꾼'으로 오명만 남기게 된다. 꼭 간단하게 이번 건에 대해서만 말하고,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이번 건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는 듯이 쿨한 얼굴로 밝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아아 나는 대인배인가 보다' 착각에 빠지며 즐거운 마음을 선사한다.


5.

사실 나는 남자 친구(그 사이 남편이 되었다)와 연애 시절 잔소리가 없기로 유명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진짜다. '잔소리를 한다고 이 사람이 과연 바뀔 것인가' 잔소리에 대한 회의와 아직 결혼도 안 한 상대에게 나의 잔소리 파워 민낯을 보여주고 싶지 않음이 컸다. (당시에는 많이 사랑했나 봅니다)  결혼 후 어떻게든 개선해서 함께 살아보고자 하는 노력이 애정을 앞질러가면서 불행히도 집안에서 프로 잔소리 퍼붓러가 되었지만, 애정이 있으니 잔소리도 함께 하는 거라고 변명도 해보고요.


6.

좋아하는 회사에서 좋아하는 팀원들에게 잔소리가 좋을 리 없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이에게 잔소리 후에도 야밤에 머리 쥐어뜯으며 반성하는 아줌마인 것을. 그래도 서로 업무적으로 혹은 함께 하는 생활을 위해 필요한 '덧붙임 말'을 서로 감정 상하지 않으며 이뤄(!) 낼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잔소리 요소들을 외면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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