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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Nov 17. 2021

14. 어떤 집을 짓고 싶나요?

나만의 집을 설계하려면...

 우리는 그야말로 운명적인 이끌림으로 북한산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이곳에 한눈에 매료되어 땅을 계약하기에 이르렀다. 서울 안에서 아이들의 학업이 가능하면서, 맞벌이인 우리들의 출퇴근이 가능하며, 산이 있고 물이 있는 전원생활까지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만약, 우리가 경제적 여건이 마련된 뒤에 집을 지으려고 했다면 부동산값 상승으로 이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신혼부터 신도림역 근처에 전세를 얻어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는데 부모님의 덕을 당연히 보았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비교적 어려서 결혼한 우리는 결혼 당시 투룸 오피스텔 전세를 얻어 시작했었고, 아이 둘이 태어나자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옮긴 후, 4년 동안 전세 빚을 어찌어찌 다 갚아가는 중이었다.


 안정 주의자인 나와 달리 금융권에 종사하는 나의 남편은 나와는 반대 성향을 지녔다. 젊은 나이에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고집과 엄청난 추진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남편은 내가 아는 한, 우리 동네 최연소 건축주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당시 그의 선택에 감사한다. 


 대부분의 단독주택 부지는 70-80평대로 분양을 하는 반면, 한옥마을에서 우리가 분양받은 단독주택 부지는 100평이었다. 몇 안 됐던 70평대의 부지는 일찍이 계약이 끝나 있었다. 듣은 바로는 Sh에서 첫 분양 당시 부지 전체를 한옥 부지로 계획했기 때문에 100평 위주의 땅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한옥의 특성상 처마가 있기 때문에 집이 훨씬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 한옥은 양옥을 짓는 것에 비해 전체 평수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후, 분양이 쉽지 않자 일부를 양옥 부지로 용도를 바꾸었다. 용도를 바꾸기 전 이곳에 매료되어 선택의 여지없이 일찍이 한옥 부지를 계약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양옥 부지를 매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100평의 땅에 혼자만 집을 짓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 함께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모두 관심을 많이 보였지만, 선뜻 우리처럼 큰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미리 지어져 있던 집들을 둘러보던 중, 한 부지에 2채나 3채를 지어 가족들이나 지인과 함께 살거나, 세를 내주어 사는 집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평면 공간인 아파트와는 달리 복층으로 구성된 단독 주택 특성상 3채를 지었을 경우,  약 33평의 공간이 2층으로 나누어진 내부 공간이 나오는데 이는 나에겐 너무나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아파트를 고를 때에도 작은 방들과, 드 넓은 탁 트인 거실을 선호해 오던 나는 3채를 지을 바에는 아파트에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함께 집을 지을 지인을 찾지 못한 우리는 100평 땅에 듀플렉스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전세를 내 줄 한 채는 우리 집보다 조금 작게 약 40평(옥상 테라스와 다락방을 포함하면 약 45평)으로, 우리 집은 내가 선호하는 넓은 거실을 위해 60평(옥상 테라스와 다락방 포함 약 65평)으로 설계를 결정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경제적으로는 더 부담스러우나, 혼자 집을 짓는 것이 함께 집을 지었을 경우 여러 가지 얽히는 복잡한 이해 관계 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심사숙고 끝에 지은 집도 짓고 살아보니, 다들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왜 집을 짓고 싶은가? 나는 어떤 것을 싫어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전문적인 집 짓기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함께 살 내 가족의 미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집은 건축 회사에서 지어준다지만, 우리 집을 짓는 것을 회사의 판단에만 전적으로 맡긴다면, 평생 한 번 짓는 집에 대한 아쉬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가 살 집이 아닌가?


 운이 좋게도 우리의 경우, 현재는 다른 일을 하고 있으나 대학 때 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남편이 있었고 주위에 인테리어와 설계를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지인이 있었다. 따라서 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모든 것을 함께 상의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이는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다. 마을에 다른 집들의 경우만 해도 부부 중에 한 명이 인테리어나 설계, 건축 부문에 일을 하신 분들의 집은 확연히 다른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가 될 수는 없어도 집을 짓기 전 되도록 많은 집을 직접 둘러보고, 건축 관련 책과 잡지 등으로 안목을 높이며 자신이 꿈꾸고 희망하는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을 던져보며 메모해 보자. 이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최근 언제 가장 행복했냐고 물어보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우리 집을 설계하고 만들었던 그 시간들이라고.....  (나는 최근 집을 짓는 동안 몸과 마음으로 고달팠던 나의 남편 또한 같은 대답을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간절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것,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꿈을 마음속에 놓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운명의 여신 또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우리가 꾸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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