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삶
누가 견우와 직녀를 애달프다 했는가. 주말 부부, 졸혼, 기러기 아빠, 혼족들이 늘어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점점 더 '혼자' 있기를 원하고 있다. 나이 쉰에 '졸혼'을 하고 산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산을 일구며, 정원을 가꾸며 사는 한 여성은 이제야 '나의 삶'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고 나 또한 나이가 들면 지금 보다는 훨씬 넓은 정원에서 텃밭과 정원을 일구며 혼자 사는 삶을 꿈꾸어 보기도 한다.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에, 끊임없는 집안일에, 회사 일까지 치이다 보면, 이십 대 후반에 결혼한 나는 가끔 서른 후반쯤에 결혼해서 내가 좋아해 마지못하는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살면 될 것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이제 결혼해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시작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몇 년 전 시댁 식구들을 만났다. 최근 사정상 남편의 공무원 은퇴 후, 펜션을 운영하게 되면서 서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이모님과 이모부님은 어쩔 수 없이 주말 부부를 하게 되었다.
'내 생애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내 눈치와 귀가 정확하다면 이는 분명 절망의 탄식이 아니라, 기쁨의 탄식이었다. 이모님의 얼굴엔 웃음이 만연했다. 얼마 전까지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사셨던 예순이 넘은 이모님은 요즘 삶이 행복하시다고 한다. 밥을 먹기 싫으면 한 끼쯤 거를 수 있고, 청소하기가 싫으면 하루 이틀쯤 쌓아두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하시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결혼 전인 아이들은 모두 분가해 따로 산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부모님들은 더욱이 혼자 이셨던 적이 없으셨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젊은 나이에 시집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때로는 시동생까지 돌보면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육십 평생을 사신 것이다. 그러니, 노년의 혼자 만의 시간이 어찌 값지지 않을까.
주말부부를 하고 나서 더 애틋해져서 부부싸움이 줄었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솔깃해진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색의 동물'인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견우와 직녀도 그랬을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직녀는 커리어 우먼으로써 베를 짜는 일을 하고, 견우는 밭을 갈면서 서로 다시 만날 그날을 무심하게 기다렸을 수도 있을 일이다. 만나는 시간이 짧다 보니, 아이가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이가 없어 견우가 '기러기 아빠'가 되지 않은 것도 어쩌면 천만다행이다.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하려고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고 보니, 요즈음 음력 칠월칠석에는 비가 잘 안 온다. 견우와 직녀가 눈물 흘릴 이유가 없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것에 시달리시는 친정 엄마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말씀하신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야. 그런데 그때는 힘이 들어서 그런 줄도 몰랐어.'
엄마의 눈가가 글썽인다.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면서도, 또 끊임없이 누군가와 상호작용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여자도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을 해야 하나보다. 이것이 내가 휴직은 할지언정 회사를 완전히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인가 보다. 엄마는 몰랐다고 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알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가장 좋은 시절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