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하는 기억
사람의 감각은 애써 저장한 기억들보다 더 깊고 오랜 기억까지도 단번에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능력이 있는 듯하다.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바람에 스치는 낯선 사람의 향수 냄새에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오랜 단짝이었던 친구를 떠올리기도 하고, 연남동의 유명한 대만 음식을 일부러 찾아가 먹으며 행복했던 대만 유학생활을 떠올린다. 또한 마라향의 훠궈를 땅콩소스에 듬뿍 찍어 먹으며, 뜨거웠던 여름의 북경을 떠올린다. 생각해 보면 20년 가까이 지난 일들이고, 내가 대만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던 시간과 북경으로 단기 유학을 떠나 있었던 시간은 불과 1년이었다. 하지만 나의 코와 입은 여전히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얼마 전 롯데리아에 대만의 야시장 음식인 닭튀김인 '지파이'가 출시되었다고 하여 반가운 마음에 한 달음에 달려갔지만, 그때의 그 맛이 전혀 아니었다. '이 닭은 지파이라고 부를 수 없다!' 내 마음속에 있는 그 시절의 소녀가 외치는 듯했다.
얼마 전 섬유센터에서 열린 '엘리스 달튼'의 전시회에 갔다. QR 코드를 찍고 들어가면 전시회를 구경하면서 그림들과 어울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그 플레이리스트에 '스티브 바라켓(Steve Barakatt)'의 연주곡이 있었다. 연주곡과 함께 그녀가 그린 70-80년대 서양식 단독 주택 테라스와 아열대 식물이 어우러진 현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내 그곳에 앉아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차 한잔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기회가 된다면 그림 속에 나오는 현관 테라스가 있는 아름다운 주택을 다시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티브 바라켓(Steve Barakatt)'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십 년 전 만났던 사람이 떠오른다. 통틀어 정확히 세 번의 만남이었지만, 우리 회사의 고객이었던 내 나이 또래의 그는 두 번째 만남에서 나에겐 생소했던 '스티브 바라켓'의 CD를 선물로 주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꽤 오랫동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취미로 연주했었고, 이루마와 김광민의 뉴에이지 곡을 좋아해 왔기 때문에,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던 이 이국적 음악가의 연주곡에 단번에 반해버렸다. 스티브 바라켓의 곡은 슬프고 서정적인 느낌보다는 기쁨과 환희의 느낌이다. 흔한 가요 CD가 아닌 뉴에이지 연주곡을 선물할 줄 아는 센스 있는 남자. 그의 작은 키와 평범한 외모는 그의 지적인 선물 하나로 단번에 호감형으로 바뀌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스티브 바라켓의 연주곡이 울려 퍼질 때면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어김없이 내 머릿속에는 그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고 미안하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영원히 잊히지 않고 싶은 사람이라면, 흔한 추억 거리가 아닌 오감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나만의 화장품과 향수 냄새, 독특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음식, 적재적소에 황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색깔과 빛,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 남은 감각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