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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Sep 16. 2021

10. 아들 둘 키워보셨어요?

오래간만의 외출

"십 년 만이에요.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긴 오네요."


  아이를 키우는 아이 친구 엄마와 유치원 선택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친해졌다. 나는 둘째 아이를 구청에서 운영하는 '구민체육센터'의 '유아스포츠단' 보내고 있었다. 활동적인 둘째 아이는 3 동안 11가지 종목의 스포츠를 배울  있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수영을   있는 이곳을 아주 즐겁게  다녀왔다. 하지만 작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구청 소속이었던 '유아스포츠단' 확진자 수가 늘 때마다 가장 먼저 문을 닫았고, 가장 늦게 문을 열었다. 그리하여 작년 1 동안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있었던 날은 1년을 통틀어 2달이  되지 않았다. 코로나가 잠잠할 만하여 문을 열면 다시 확진자 수가 솟았고, 유치원에   없는 날이 점점 길어졌다. 하지만 아이들의 엄마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이곳을 쉽사리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보낼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하루하루 확진자가 줄어들기를 바랐다. 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이 확진자  확인이었다. 확진자 수가 조금 줄어드는가 싶을 때는 희망을 갖었다가 다시 솟을 때는 절망스러웠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을 나가야 하는 맞벌이 가정은  이상 유치원이 다시 열기를 기다릴  없어 하나,  스포츠단을 떠나 긴급 보육이 가능한 어린이집이나 사립 유치원으로 옮겨갔다. 다행스럽게 나는 육아 휴직 중이었고, 유치원을 옮기고 싶지 않다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약해진 나는 일 년 내내 아이를 집에 데리고 스포츠단이 다시 열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2021......  해가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오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개학하면 얼굴   보자는 것이었다. 개학?? 2학년인 아이도 작년 대부분 일주일에 한두 번 출석을 했다. 온라인 수업도 쌍방향 수업이 아닌 온라인 링크가 전부였다. 개학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던가. 듣고 보니 나와 또래의 아이 둘을 키우는 친구는  아이는 사립학교를, 둘째 아이는 사립 유치원을 보내   계속 등원을 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두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알았다. 이것이 당연한  알았다. 나만 바보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쯤 보게 된 ‘1년의 교육 공백, 100년짜리 빚이 되다’라는 기사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아이들의 학습 공백의 경제적 손실 가치가 매우 크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다루고 있었다. 뒤늦게 사립학교와 사립유치원을 알아보았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대기번호 13번이었던 사립학교에서 2 , 전화가 왔다. 1 동안 대기한 끝에 둘째가 사립유치원까지 들어갈  있었다. 2021 9월이  지금, 여전히 스포츠단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때의 나의 선택이 옳았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그녀도 나와 같은 선택을 했다. 나의 둘째 아이보다 2  어린 셋째 아이까지 뒷바라지하느라 10  하루도 혼자 쉬어  적이 없다는 그녀는 작년,  살이  셋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어린이집에 실제로  날은 손에 꼽았다. 그렇게  아이가 동시에 등원  날은 1년을 통틀어  '하루'였다. 3, 아이들 입학식 , 아이들을 모두 등원시킨  그녀와 함께 동네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날따라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다. 의자에 앉으며 입을  그녀가 하는 첫 번째 말이었다. '이런 날'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말이 없었다. 작년,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서 부대끼면서 내가 좋아하는   줄도 제대로 읽을  없었던 나의 숨 막힘에 대해 말을   없었다.  


 나의 두 아들은 그야말로 '껌딱지'이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성적인 아빠와 내성적인 엄마가 만나 이 내성적 유전자가 폭발적으로 발현되어 버린 건 아닐까 가끔 혼자 생각해 보곤 한다. 하지만 그냥 내성적이라고 하기엔 '편안한 환경'에서는 두 아들은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장난기가 가득하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젊잖은 아들 둘을 데리고 내가 왜 자꾸 야위어 가는지 모를 것이다.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이러한 '광경'을 본 사람들은 '정신이 몽롱하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내가 단독 주택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두 아들은 기본적으로 5번은 말해야 반응하며, 지시한 것 외에는 수행하지 않는다. 가령, 이제 잘 시간이니까 이 닦고 오라고 하면, 세수하고 발 닦는 것은 잊은 채 정말 '이'만 닦고 온다. 그것도 매번 이런 식이다. '낯을 많이 가리지만 활동적인 아이!' 엄마에겐 최고 난이도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살에 어린이집에 처음 보낼 때는 9개월을 울고 다녔다. 보통 1 달이면 적응을 한다던데 9개월 내내 헤어질 때마다 무슨 생이별하는 것처럼 울어댔다. 처음엔 마음이 찢어졌지만, 9개월째 되자  아이이지만 넌덜머리가 났다. 복층에 사는 지금은 내가 빨래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러 다른 층에 내려가  보이면 둘째 아이가 엄마를 수십  불러댄다. 다른 층에 있는 방에 가서 물건을 가지러  때도 무섭다며 나와 같이 간다. 2층이 주요 거실인 우리 집에서 이렇게 나는 집안 일과 택배 픽업까지 포함해 계단을 하루에 수십  오르내린다. 잠을  때는 3학년이  아들까지 나를 가운데 끼고 양쪽으로 손을 잡고 잔다. 잠을 자는 동안  아이는  배에 다리를 올리고, 얼굴에 팔을 올리며, 때론 180 돌아 눕는다. 가끔 90도로 돌아 누우면  골치다. 이젠 무거워서 도저히  힘으로 돌아 눕힐 수도 없다. 둘째 아이는 주로  품을 파고들어 급기야는  베개까지 내어주게 된다.


 나는 만성피로로 한의원, 가정의학과, 대학병원까지 전전해보았다.


'아이들이랑 똑같이 10시에 잠이 들어서 8시에 일어나니까, 10시간씩 자는데도 너무 피곤해요.'


 나의 말이 끝나자 의사가 대답했다. '아이들이랑 같이 자서 그렇습니다! 주말이라도 혼자 한 번씩 주무세요.' 명의였다. 그렇다. 밤새 나는 자는 게 아니라 시달리고 있었나 보다.


 중고등학생 아들 둘을 둔 지인은 투덜대는 나를 부러운 듯 쳐다봤다. "곧 아는 척도 안 하는 날이 올 거예요. 지금을 즐겨요!"           


 2학년쯤 이후부터는 밖에서 뛰고  옷에서  남성의 꿉꿉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또한 아이가 커간다는 증거 이리라. 7살인 둘째 아들에게는 아직 아기 냄새가 남아있다. 아이가 입은 옷에도 아이의 체취가 벤다. 유치원에 보내고   아이가 벗어 놓은 옷들을 정리하며, 가만히  코에 아이의 옷가지를 가져다 댄다.  냄새를 맡을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이들의 보드라운 볼에 입술을 비비고, 벌름벌름하는 작고 귀여운 아이들의 코에 입을 맞추며, 나는 오늘도 내일을 위해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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