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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Oct 05. 2021

13. 위드 코로나

시시한 말들

 잠시일 줄로만 알았다. 코로나로 세상이 뒤숭숭했던, 근 한 달 동안은 내 앞마당에 나서는 것조차 무서워 달이 기울도록 밖으로 발조차 내딛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뜻하지 않게 주어진 아이들과 부대끼는 이 시간들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더 이상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 먹이고, 허둥지둥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되었고, 단 몇 시간 쉬었다가 학교로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찾으러 가, 이 학원 저 학원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었다. 갑자기 발생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삶의 여유가 생긴 듯이 느껴져, 이 갑작스러운 제약들이 은근히 반가웠다.  


 그것도 잠시, 한 학기가 지나도록 학교는 예전처럼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의 한 두 번의 수업이 전부였다. 한두 번 가는 학교 수업도 전부 단축 수업이었다. 둘째의 유치원은 아예 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늘 회사일로 바빴고, 사실상 그에겐 코로나로 인해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덧 나의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하루 종일 아이들 수준에서 하는 아이들과 하는 대화 외에 ‘어른과의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과 말들이 나아갈 방향을 잃은 듯했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한동안 중독처럼 책을 읽어 댔다. 그러나, 아이들을 재운 뒤 새벽녘까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도 여전히 나의 가슴은 꽉 막힌 듯했다. 흘러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흘러 나가는 것도 필요하듯, 이렇게 흘러 들어온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근했던 ‘사람들’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나는 잃어갔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에서 “시시한 말을 하고 나면, 내 안에 있는 빛이 조금씩 새어 나가는 것 같다” 고 하셨다. 예전에는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요즈음 나는  ‘시시한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는  안에 있는 빛을  시시한 말들로 마음껏 흘려보내고 싶다. 그렇게 시시한 말들로 웃고 떠들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함께 빛나고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여럿이 모여 앉아    마시며 시답잖게 내던지던 농담들과 가벼운 대화들이, 다시금 ‘시시하게느껴질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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