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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Apr 05. 2022

17. 꿈꾸는 테라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옥상 테라스를 가리킨다. 특히 봄과 가을에 테라스는 빛을 발한다. 한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과 숨 막히는 더위에, 한 겨울에는 추위로 잘 발이 닫지 않는 곳이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새소리, 난간과 지붕 위로 올라오는 까치와 까마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에 절로 황홀해진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토스트와 커피 한잔을 들고 예쁜 식탁보를 야외 식탁에 깔아 놓고 조용히 책을 읽는다.


 저녁에는 남편과 함께 맛있는 맥주 한잔을 들이켜며, 쥐포 몇 장을 구워 올라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묵혀 놓은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꺼내어 놓는다. 이 순간만큼은 아이들의 방해조차 없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아이 친구 엄마들을 불러 브런치를 대접한다. 예쁜 식기와 잔에 파란 하늘까지, 루프탑 카페 분위기를 내어본다. 나의 집에서는 대낮에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도 카페와는 달리 눈치 볼 옆자리 사람이 없다. 이렇게 나의 집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힐링을 했다고 고마워한다. '힐링'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선물 같은 말이다. 나의 작은 수고로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힐링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내 공간을 나누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뒤로는 마음까지 넓어지는 듯하다.


옥상 테라스에서의 브런치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고 가능해졌다. 집에서 이러한 것들이 가능해지고, 만족하게 되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횟수가 줄었으며 아이들과 돈을 들여 체험전과 키즈카페에 가는 횟수 또한 줄었다.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우리는 집에 몰빵 했어. 가진 건 이 집뿐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집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위로와 안식은 집에 들인 돈 대신 다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집에서 편안함과 안식은 느꼈을지언정, 기쁨, 행복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뛸 수 있는 야외로, 키즈카페로, 체험전으로 나가야 했다. 아이들과 집에 있으면, 더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이들 용품과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된 집을 뒤로하고, 책을 읽기 위해 카페로 피신했다. 엉망이 된 집 안에서는 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책에 집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젠 거실이 지저분하다면, 책 하나를 들고 옥상이나, 다락방으로 피신할 수 있다.


 우리의 부모세대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저 '이사 안 하고 살 수 있는 내 집 한 채 있으면 된다' 하는 개념으로 집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하지만 요즈음은 집이 다만 생활공간일 뿐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고, 직접 꾸미며, 누리고 향유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인테리어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단독주택을 선호하며, 테라스 하우스를 찾는다. 작은 원룸에 살면서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소품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


나는 오늘도 테라스에 놓을 새로  화분의 위치를 밤새 고민하며, 이리 놓았다가 저리 놓았다가  번도 넘게 옮겨 놓는다. 그리고 제자리를 찾은 듯한 화분을 보며, 만족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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