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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Apr 16. 2022

18. 나는 왜 쓰는가.

글쓰기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독서 토론 과외를 꾸준히 시켰다. 책을 읽고 와서 친구들과 토론하고, 글을 썼다. 어렸을 적 나에게 책 읽기는 이 독서 모임의 과제 수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꾸준히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은 지금도 나를 책을 좋아하는 아이, 교실 창가에 앉아 쉬는 시간마다 늘 책을 읽던 아이로 기억한다. 나는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니면서도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초등학교 때 지금의 '한우리'나 '플라톤' 같은 종류의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독서 선생님은 자신이 그만두는 마지막 날 선물이라며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불러주셨다. 단짝 친구와 나는 처음 듣는 선생님의 그 노래를 들으며 펑펑 울었고 급기야는 선생님도 울고 말았다. 그때 선생님과 우리들은 학습지 교사와 제자 그 이상의 어떤 끈끈함이 있었다. 아마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짧은 단발머리의 젊고 예뻤던 독서 선생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좋은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글을 곧 잘 썼고, 또 글쓰기를 좋아했다. 학교 백일장에서는 늘 상을 탔다. 대학에 와서는 과에서 주최한 에세이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 그 당시 나로서는 큰돈인 상금 백만 원을 받았다. 도서관 등에서 주최한 글쓰기 공모전에 입상해서 도서상품권도 쏠쏠히 받아왔다. 문학 리포트를 내면, 교수님께서 내 리포트를 그 많은 학과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읽어주거나 칭찬하셨다. 이렇다 보니 평생의 꿈같은 것이 자리 잡혔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글쓰기 플랫폼도 없었고 소셜 네트워크도 유행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나의 꿈이 독특한 생각인 줄로만 알았다. 친구들에게 글을 쓰고 싶다고 얘기하면, 특이한 아이 취급을 했으니까. 대학교에 다닐 때, 내가 좋아하는 '공지영' 작가의 특별 초대 강연이 있었다. 무턱대고 쓰려고 하지 말고 아직은 젊으니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한 뒤에 쓰라는 조언을 듣고, 나는 그 기준을 은퇴 후로 잡았었다.


소셜 플랫폼이 유행하면서 나와 같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 적잖이 놀랐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책을 낼 수도 있다. 왜 내가 꿈꿔오고 이제 하기 시작하니 유행이 되어 버리는 걸까. 어려서부터 단독주택, 정원 가꾸기, 글쓰기가 나만의 꿈이었고, 적어도 내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좀 독특한 존재였는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에 반가우면서도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식상해지는 것 같아 이상한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첫 책으로 한 번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며, 일어나는 질투심과 나도 하고 싶다는 두근거림이 동시에 일어난다.


글쓰기에 관한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서민적 글쓰기 (서민),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다혜), 무엇이든 쓰게 된다. (김중혁)...' 그리고 무료, 유료 강의, 오프라인, 온라인 강의도 참 많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공통점들도 찾았다.  이 책들에서 말하는 공통적인 말들은 이렇다. '어떻게 해야 잘 쓰나'에 대한 정해진 방법은 없으며, 최선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많은 작가들이 독서광이라는 것이며, 끊임없이 일단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작가들의 경험에 따르면 때로 많은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글을 쓰고 있는 듯한, 소설의 세계로 자신이 이입해 들어간 듯한 경험을 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칙센트 미하이'가 말하는 완벽한 '몰입(flow)'이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 공통점은 '전업 작가로 살아가기는 어렵다.'이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계의 해결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글 쓰는 일을 다른 '일'과 병행하고 있는 듯하다.


글쓰기 강좌에 들어가 열심히 글을 쓰고 문집이 나왔을 때 행복했다. 하지만 나의 글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기가 창피한 마음에 문집을 집 창고에 쌓아 두었다. 그 후,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쓰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어주는 것에 가슴이 두근댔다. 그리고 매일 '좋아요' 개수를 확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 작은 의문이 생겼다. 구독자가 많아지면 더 행복한 걸까? 브런치 북을 내면 행복한 걸까? 더 나아가서 만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난 후에는 완벽히 행복해지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쓰는” 걸까?


인문서보다는 수필과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움츠려 든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도 많구나…… 막 데뷔한 신인 작가의 글은 유머러스하고 참신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훌륭한 작가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오늘도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쓴다. 몰입을 하면 할수록 행복해진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내가 된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앞으로 어떤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아진다.


자신에게 상처 줬던 사람을 소설의 악역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조용히 복수하겠다는 '박완서'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처럼, 언젠가 나의 글을 바로 그 누군가가 읽고, 아름다웠거나 슬펐거나 부조리함을 느꼈던 그때 그 순간의 우리를 한 번쯤 떠올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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