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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Jul 17. 2022

환하게 빛나는 성곽 길을 걷다

수원 화성


‘그냥 한없이 걷고 싶다.’

사회생활을 하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주어진 일에 중압감을 느낄 때면 마냥 걷는 상상으로 현실을 견뎌냈다. 어떤 곳이든 좋을 것 같았다. 햇빛과 바람과 자연을 느낄 수 있다면.      


교직을 명퇴한 후 많이 걸었다. 틀에서 벗어나 평일 대낮에 한가롭게 다닐 수 있어서 감사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도서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길 위의 인문학’을 통해 강서구를 걷는 기회가 있었다. 겸재 정선과 명의 허준의 발자취를 따라 소악루, 공암 바위 등을 찾아다니며 걸었다. 자연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 예술을 느낄 수 있어서 걷는 행동이 더 풍요로워졌다. 함께 걸으며 찍은 사진과 감상문 들이 책으로 엮여져 나오니 더 의미가 있었다. 그 모임의 한 회원으로부터 ‘사단법인 여행 작가 학교’를 소개 받고 등록했다.      


2018년 봄에 실습여행을 간 곳은 수원화성이었다. 걸으며 느낀 점을 글로 정리하고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걸은 코스는 화성행궁, 팔달문, 서장대를 거쳐 화서문,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에 이르는 길이었다. 성곽 길과 구조물에 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체여행 이후, 여름에 혼자서 같은 코스대로 차분하게 다시 걸어보았다. 인도하는 대로 따라 걸을 때와는 달랐다. 성곽 안으로 버스가 다니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어 어디가 성 안이고 밖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서장대에서 화서문까지 성안으로 걷는 중에 서북공심돈이 보이는 풍경은 발길을 멈추고 한참 바라볼 만큼 특별했다. 화서문 이후 장안문까지는 넓은 공원길을 걸으며 성곽을  바깥에서 바라보며 걸었다.      


장안문에서 성안으로 들어와 더위에 지쳐갈 때쯤 도착한 화홍문(북수문)에서는 안으로 들어가 쉴 수 있었다. 수원 천 물길의 위쪽에 위치한 화홍문은 건물 아래 수문으로 물이 시원하게  통과하고 있었다. 화홍문(華虹門)은 ‘7개의 수문을 통해 맑은 물이 넘쳐흘러 물보라를 일으키는 것이 현란한 무지개처럼 아름답다’는 뜻을 지녔다. 화홍문 옆에는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니는 정자’라는 의미의 방화수류정(訪花隨柳)이 있다. 동북각루라고도 불리는 군사지휘소지만 버드나무가 늘어진 연못인 용연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정자다. 16각형 마루와 장식이 빼어난 지붕은 독특하다.     


방화수류정 안에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 동북포루가 멀리 보였고 하늘에는 계류식 헬륨 기구인 ‘플라잉 수원’이 떠있었다. 높이 150미터 정도까지 상공에 오를 수 있다는 기구에서는 수원 시내가 한눈에 보일 것 같았다.      


2018년 가을인 10월 7일 저녁에는 55회 수원화성문화제를 보러 갔다. 화성행궁 앞 도로는 차량이 통제되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어 다녔다. 능행차 행렬이 장안문에서 연무대쪽으로 이어졌다. 구경하는 인파가 많아서 잘 안 보였으므로 8시에 하는 폐막공연을 보기위해 연무대로 갔다. 수원 천을 따라 걸어올라 화홍문을 거쳐 연무대로 가는 길에서 행렬을 만났다. 말을 탄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수원화성에 불이 들어와 야경이 멋있었다. 멀리서 본 방화수류정의 불빛도 아름다웠다. 밤하늘에 환한 열기구가 뜨고 수원화성문화제 폐막공연 ‘야조’가 진행되었다. 공연 좌석들을 설치한 곳은 동장대인 연무대 근처의 활쏘기 체험을 하는 드넓은 잔디밭이었다. 정조대왕의 야간 군사 훈련을 수원시립 공연단이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夜操’는 ‘밤에 굳게 마음을 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창룡문을 배경으로 다양한 색의 영상이 어우러진 뮤지컬 공연은 웅장했다.       


여러 번 혼자서 수원 화성을 찾아 걷다보니 차츰 익숙해졌고 다른 사람들을 안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이고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서장대에는 정조가 군사훈련을 지켜본 후 감회를 읊은 시구가 있다. 실물 현판은 국립박물관에 있다. 깃발들도 처음에는 무심히 봤는데 서쪽 성곽 깃발은 흰색, 북쪽은 검은색, 동쪽은 청색, 남쪽은 붉은 색으로 구별되어 있다. 화성(華城)의 ‘화’는 빛날 화(華)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성이라는 이름은 정조 대왕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당파를 초월한 혁신정치를 실현하고자 신도시를 계획했던 정조는 재위 기간 중 13차례나 수원화성에 행차해서 행궁에 머물렀다. ‘노래당’(老來堂)은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노후를 보내려 지은 곳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쉽게 뜻을 펼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신념과 의지는 고스란히 수원 화성에 남아있다. 절대 절명의 노력이 후세에도 빛을 발하니 수고로움이 헛된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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