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창들과 완도여행
여고동창 모임에서 완도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도에서 한 달 살기’에 참여해 하루에 숙박비 일부를 지원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친구들이 갈 거라는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의외로 가겠다고 했다. 일주일간 시간을 내어 네 명의 친구들이 2019년 11월에 함께 떠났다. 한 친구가 운전을 하겠다고 해서 더욱 들뜬 여행이 시작되었다.
완도수목원과 청산도는 전에 가본 적이 있었지만 친구들과 가을에 오니 같은 장소라도 느낌이 달랐다.
약산면 당목항에서 아침 8시에 철부선을 타고 20분정도 걸려 생일도 서성항으로 갔다. 다도해 해상의 호젓한 섬 생일도. '용출갯돌밭의 '멍 때리기 좋은 곳'이라는 팻말의 문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출갯돌밭에서 금머리갯길을 따라 금곡해수욕장까지 걸었다. 바다를 보며 걷는 산의 둘레길인 생일섬길 B코스는 1시간 50분정도 걸리는 길이다. 평탄한 풀길과 경사진 돌길이 이어졌다. 가파르고 좁은 길을 걸을 때는 긴장도 됐다. 등산을 자주하는 친구가 선두에 섰고 나머지는 조심스럽게 뒤를 따라갔다. 산 곳곳에는 방류한 흑염소들이 많았다. 어려운 코스를 지나 금곡해수욕장에 다다랐다. 일요일 오전 바다는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다리로 연결된 섬들도 있지만 배를 타고 가는 섬은 더욱 호젓하다. 생일도에서도 육지와는 다른 섬 본연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완도 정도리 구계등을 찾아갔다. 해안이 자갈로 이루어진 바다라는데 주차장에서는 바다가 안 보였다. 숲길을 조금 걸어가자 자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큰 자갈들이 많았다. 파도에 자갈들은 밀려가고 굴러오기를 반복했다. 신라시대에 이 지역을 녹원지로 봉하였다니 물결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갈들의 움직임에서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게 됐다. 구계등(九階燈)의 뜻이 궁금해졌다. 파도에 밀려 표면에 나타난 자갈밭이 9개의 계단을 이룬다는 것에서 유래했다한다. 해안이 자갈이어서 더욱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과 자갈 밭애 앉았다가 다 함께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단단한 자갈의 감촉도 편하게 느껴졌다. 예전 여고 시절이 떠올랐다. 방과 후에 교실에 모두 남아 자율학습을 했었다. 편한 체육복 차림으로 공부하다 쉬는 시간에는 잔디밭에 모여 앉아 리즈크래커를 사먹곤 했다. 양 갈래 머리를 땋았던 풋풋한 여고생들이 나이 들어서도 편한 친구로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저녁식사는 여객선터미널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전복뚝배기는 얼큰하고 시원했다. 완도는 전복양식을 많이 해서 전복을 이용한 요리가 많았다
완도에서 숙소는 고금면 ‘청학동 녹색농촌체험마을’이었다. 여행 첫날에는 여러 군데를 들러서 늦게 들어갔다. 어두워진 상태에서 차로 좁은 길을 가다보니 다함께 막막했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근처에 유자 밭이 많았고 펜션 앞은 넒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숙소에서 한달 가까이 머물며 낚시를 하고 여유를 즐기는 분들도 있었다. 마당의 나무 데크 위에 텐트도 쳐 놓았고 낚시로 잡은 생선들을 삼단 그물망에 넣어 매달아 놓기도 했다. 바다에 설치해 놓은 그물들은 물이 나가면 모습들을 고스란히 보였다. 같은 장소지만 아침 저녁 느낌이 다르고 해가 지는 저녁풍경도 매일 날씨마다 달랐다. 붉은 색 노을이 강렬한 날도 있었고 차분한 느낌의 날도 있었다. 한 숙소에서 여러 날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았다. 한 장소를 근거로 삼고 완도, 청산도, 보길도. 생일도, 강진 등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숙박비와 입장료를 지원해주니 여행경비 지출에서 도움을 받았다. 한 지역을 천천히 둘러보며 알아갈 수 있는 ‘남도에서 한달 살기’ 프로그램. 친구들과 지내며 서로 배려하고 몰랐던 부분도 알아가며 이해의 폭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모두 일주일이 짧은 느낌이 든다 했다. 두고두고 이야기할 아쉬움 남는 다채로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