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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깡의 짜투리 Dec 11. 2024

자투리 이야기

기록의 프롤로그

희망퇴직을 했다.

정확히 18년 하고 7개월 28일을 다닌 회사였다.


희망퇴직 공고가 올랐고 고민했고 신청을 하고. 서로 약속한 날짜가 되어 회사를 나왔다.

편의점에서 어떤 음료수를 먹을지 잠시 고민하고 가격에 혹하고 행사정보에 흔들리다 결정하고 계산하고 나오는, 딱 그 정도의 절차였다.


이 심플한 절차 속 2주의 신청 기간 동안 40년 남짓 인생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을 경험했다.

아마도 앞으로 남은 삶을 살면서 겪을 수많은 감정까지, 미리 보기 한 기간이었을 테지.


희망퇴직 신청서를 내고 나서야

내가 이 회사에 애정이 아직도 이렇게나 많구나 라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고 이내 곧 한없이 슬퍼졌다. 번복해야 하나 번복가능한가 찾아볼까 물어볼까의 고민 1분 후에는 결심대로 해 보자 인생 2막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는 애써 긍정의 사고를 돌렸다.


걱정 속에서도 희망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가므로

나의 지금 감정과는 무관하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99%. 나머지 1%는 지금의 결정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후회의 선택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판단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이 1%만이었다면 그나마 올바른 선택이었으려나.


누군가가 보기에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을 너무 오래 쥐고 있어서 그런지 내 손안에 모래처럼 느껴졌다.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고 지난 나의 3년을 돌아봤을 때 내 시간의 참 밀도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회사와 육아를 하면서 어느 쪽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달라붙은 내 볼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는 멘트도 이제 그만 듣고 싶어서


그래서 희망퇴직을 신청했는데.


여전히 육아는 제대로 하고 있나? 하면 글쎄.

내가 여기에 재능이 없구나 라는 증명만 하고 있는 기분이 들지만


희망퇴직 그 이후의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이라도 찾아보기 위해 노력해 봐야지.


그렇게 나는

본격적인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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