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의 기록
첫 번째. 그동안의 야근에 대한 보상 심리로 평소와 다르게 30분 늦게 출근을 했다.
두 번째. 노트북 반납하러 갔고 희망퇴직을 하는 회사에서 퇴사 노트북 반납이란 줄 서기란 걸 깨달았다.
(퇴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다니 ㅋㅋㅋ)
세 번째.
가방을 내려놓고 각 층을 돌면서 고마웠던 분들, (마음으로) 미웠던 분들, 같이 일을 했던(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지는 않은 분들), 일은 안 했으나 서로 인사는 했던 분들을 찾아 오랜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다.
누군가는 부럽다 하고 누군가는 용기 있다 하고 누군가는 걱정을 했다. ('이제 뭐 할 거니? 요즘 채용시장 정말 안 좋은데'. 압니다. 알지만 퇴사하는 거예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위로받으며 일을 했던 시간도 오래되었나 보다.
몇 사람들은 나의 퇴직에 울었고 나 역시 그 파도에 휩쓸릴 것 같아서 빨리 인사를 하고 도망쳤다.
가는 길에 인사하지 못한 분들의 문자가 왔지만
역시나 마음이 힘들어질까 봐 밝은 답 문자를 보내고 얼른 폰을 닫았다.
학교 선배를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낮술을 했다.
"야, 쫄지 마. 인생 좋을 것도 많이 없지만 어려울 것도 많이 없어. 지금 우리 나이는 매일 매 순간
더 행복해질 선택을 하는 거야"
네.. 제가 이 조언을 듣고 나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희망퇴직을 했는데 말입니다.
(위로금에 혹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선배와 감자탕을 먹었고 소주를 한잔하고 커피를 마셨다.
감자탕을 먹을 때는 그냥 행복했고 소주 한잔 할 때는 이유 없이 슬펐으며 커피를 마실 때는 희망에 찼다.
나란 사람은 참으로 가볍다.라고 생각했다.
네 번째.
집에 온 후 아이들 학교 앞에 갔다.
첫째와 둘째가 태어나고 학교에 간 이후에는
학교에 상담 한번 가 본 적 없고 등교는 남편이 하고 하교는 아이들이 먼저 집에 와있으면 집에서 맞이하고 하는 일상이었는데. 학교 정문에서 망부석처럼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제야 가슴속에서 행복감이 피어났다.
다섯 번째는 집에 와서 씻고 평상시처럼 밥을 먹었다.
저녁에 케이크 초에 불을 붙여 '100수'기념 파티를 하고 치우고 잠 잘 준비를 한 게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내일 아이들 학교 준비를 봐주고 보통의 날과 똑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꿈을 꾼 것 같고 잠은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몸은 쉬고 싶었으나 뇌는 밤새 고민을 하고 걱정으로 잠 자기를 거부했다.
인생 쫄지 말라고 하는 선배 말에 공감했지만 내 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앞으로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