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나를 다시 꺼내는 이야기
거울 앞에서 울지 않게 되기까지
예전엔 아침마다 거울을 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습관적으로 거울 앞에 서서 피부를 체크하고,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조금 더 꼼꼼하게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피부 톤은 어떤 지, 컨디션은 어떤 지, 얼굴이 부은 건 아닌지. 그것이 내 일의 시작이었고, 매일 아침의 작은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날을 살아오다 보니 내가 보고 있는 건 ‘내 얼굴’이 아니라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거울을 보는 게 조금씩 싫어졌다. 피부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내 얼굴이 아니라, 얼굴 너머의 삶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모른 척했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밝히느라 내 얼굴이 조금 흐려지는 건 당연한 줄 알았다. 누군가 “요즘 얼굴 좋아 보여요!”라는 말을 건네줄 때면, 그 말을 받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도 좋았다. 나는 누군가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일을 하니까, 그 정도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어느 날,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난 후 거울 앞에 섰을 때였다.
조명이 꺼지고,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 혼자 남아 거울을 마주하는 순간, 그제야 내 얼굴이 보였다.
아니, 내 얼굴이 아니라 거울 속에 서 있는 지친 한 사람이 보였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피부는 지쳐 있었고, 주름은 깊었으며, 나를 향하는 내 표정이 낯설었다.
‘그동안… 너 많이 힘들었구나.’
마치 오랜 친구에게 말하듯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누구보다 멀리했던 바로 ‘나 자신’에게.
내 손이 내 얼굴로 조용히 올라갔다. 그렇게 수백 명의 피부를 만지면서, 정작 내 얼굴을 만지는 일은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천천히 손바닥으로 볼을 감싸 안았다. 피부가 기억하지 못했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서 울지 않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가.
그 후로 나는 고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아침엔 피부를 살피는 대신,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 나에게 "잘 잤니?" 하고 말을 걸었고, 피곤한 날에는 "오늘은 쉬어도 괜찮아" 하고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살피듯, 내가 나를 살피는 것이 진짜 ‘가꾸는 일’이라는 걸.
그 후로, 거울 앞의 내가 조금씩 달라졌다. 주름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선명한 것은 내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였다.
이제 거울 앞에서 나는 울지 않는다. 대신,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수고했어. 오늘의 네가 정말 좋아.”
나는 여전히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전과 지금은 확실히 달라졌다.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바쁜 일상이나 워킹맘으로서의 고단함보다 나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딸들에게 나는 늘 강한 엄마여야 했다. 어머니 앞에서도 나는 늘 든든한 딸이어야 했다.
고객들 앞에선 변함없이 밝고 다정한 피부관리사여야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 속에서 정작 ‘진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하루는 어린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내게 물었다.
“엄마는 뭐 할 때 제일 행복해?”
순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언제 행복했더라?
피부관리사로 일하며 고객들의 얼굴이 좋아지는 걸 볼 때?
딸들의 성적표가 좋게 나왔을 때?
모두 내 삶의 행복한 순간들이었지만, 내가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해 행복했던 적은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홀로 거울 앞에 앉아 내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다. 살짝 늘어진 눈꺼풀, 희미한 기미, 깊어가는 팔자주름, 그 속에 숨겨진 수많은 날들의 흔적이 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정말 고생 많았다. 그런데 너, 행복하니?’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았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행복해져야겠다고. 그 행복의 출발점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그날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조금씩 일상의 작은 것들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아침엔 내 피부를 위해 가장 좋아하는 향의 크림을 발랐고, 저녁이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바빠도,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딸도 아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 작은 변화들이 내 삶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거울 속 내 얼굴에도 예전과는 다른 표정이 번졌다. ‘지친 엄마’도 ‘바쁜 워킹맘’도 아닌, 그냥 ‘나 자신’의 얼굴이었다.
나 자신을 돌보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내가 행복해야 내 가족도 행복해진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딸들에게도 이제 나는 당당히 말한다.
“엄마는 스스로를 돌볼 때 제일 행복해.”
딸들이 나중에 커서 나처럼 엄마가 되었을 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를, 나의 작은 변화들이 언젠가 아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기를, 조금은 욕심내어 기대해 본다.
거울 앞에서 울지 않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삶의 주름을 지우는 것보다, 마음의 주름을 먼저 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거울을 볼 때면 나는 더 이상 내 얼굴의 주름을 세지 않는다. 그 대신 내 삶에 새겨진 따뜻한 흔적들을 하나씩 되짚으며 웃음 짓는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고 많았어. 오늘도 네가 참 예뻐.”
그렇게 내 삶은 다시 밝아지고 있다. 주름보다 먼저 펴졌던 마음 덕분에.
그렇게 거울 앞에서 다시 나를 발견하게 된 후, 가장 먼저 변화가 온 것은 내 마음이었다.
이전에는 손님을 맞이할 때마다 항상 마음 한쪽에서 부담감이 느껴졌다.
“나는 괜찮아야 한다”, “나는 밝아야 한다”, “내 얼굴은 지치면 안 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무게가 항상 나를 눌렀다.
그러나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괜찮아.”
“오늘의 너도 충분히 괜찮아.”
그렇게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놀랍게도 주변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나의 두 딸들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그전까지 아이들은 집에서 늘 바쁘고 피곤한 엄마를 보며 자랐다.
어쩌면 아이들도 엄마의 바쁜 표정과 지친 어깨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돌보기 시작하자,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어느 날 딸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요즘 왜 이렇게 예뻐졌어?”
순간, 나는 말을 잃고 가만히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의 눈엔 정말로 내가 예뻐 보였던 걸까? 어쩌면 내가 나를 아껴주자, 아이의 눈에도 비로소 내 진짜 모습이 보였던 것인지 모른다.
그 말을 들은 날, 다시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너 요즘 예뻐졌더라.”
처음엔 어색해 웃음이 났지만, 조금씩 내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를 돌보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점점 자신감도 생겼다. 예전엔 주름을 감추려고 화장을 두껍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얼굴에 아주 얇게, 스킨과 크림만으로 외출을 했다. 거울 속 얼굴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원장님, 요즘 뭔가 좋아 보여요.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얼굴이 환해졌어요. 무슨 비결 있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비결은 별거 없어요. 그냥 저를 좀 더 좋아하기 시작했을 뿐이에요.”
정말이지 그것이 전부였다.
내가 나를 돌보기 시작한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가 바뀌었다.
그런 변화 속에서 내 마음 한쪽에서 늘 아프게 남아 있던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났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혼자 삼 남매를 키우셨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도 늘 자신을 맨 마지막에 두셨다. 나는 마음 한편으로 아팠고, 동시에 두려웠다. 혹시 나도 나중에 어머니처럼 내 삶을 놓아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머니에게도, 딸들에게도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계셨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지금이라도 내게 말을 건넨다.
“엄마,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게요. 이제라도 내 삶을 사랑하며 살 거예요.”
이제 나는 하루하루 거울 앞에서 내 주름을 애정 어린 손길로 어루만지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삶은 참 고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내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이제는 거울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늘 이렇게 속삭인다.
“괜찮아. 오늘 네 모습도 참 예뻐. 잘하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마다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해진 내 모습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천천히 퍼져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내 마음의 주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펴지고 있었다.
나는 한때, 누군가가 내게 ‘마음의 평화’나 ‘믿음’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그저 막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종교는 불교였지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종교 없이 살아왔다. 세상 모든 일은 결국 내 힘으로 버텨내야 한다고 믿었다.
마음의 무게가 커질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고, 외로워졌다. 고객들을 관리하며 삶의 밝은 면을 강조했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은 언제나 메마르고 쓸쓸했다.
삶이 너무 힘들고 탈출구가 없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기도를 해보기 위해서 교회를 찾았다.
작고 아늑한 교회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마음에 평화가 깃든 듯했다.
오랫동안 혼자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누군가 내 어깨에서 내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나님을 알아가기로 결심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따라서 절에 갔었고 혼자 성당을 꽤 오래 다녔었다. 나에게 신앙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어색했고, 여전히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조금씩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면서 내 안에 있던 메마름이 서서히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기도가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힘든 날이면 나는 혼자 기도를 했다.
“하나님,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웃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혼자 견뎌야 한다고 믿었던 삶이,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으로 바뀌면서 내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무엇보다 내 얼굴이 달라졌다.
그전까지의 내 표정엔 언제나 불안과 걱정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에 평화가 깃든 얼굴로 거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강하지 않다. 여전히 흔들리고, 때로는 걱정에 잠 못 드는 날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아주고, 나를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신앙을 갖게 된 이후, 나는 피부관리사로서 고객들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들의 피부만 관리해 주었다면, 지금은 그들의 마음까지 함께 위로하고 보듬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해지자, 사람들은 내 손길에서 더 큰 위로를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내 힘이 아닌, 내 안에 함께하는 하나님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오랫동안 찾아온 고객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을 만나고 나면 참 이상해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참 편안해져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안에 함께 해주셔서, 이렇게 제가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눌 수 있게 해 주셔서요.”
종교 없던 내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내 얼굴의 변화가 아니었다. 진짜 변화는 내 마음에 찾아온 깊고도 고요한 평화였다.
이제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나의 삶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한다. 그리고 말한다.
“괜찮아, 이제 혼자가 아니야.”
나에게 다가온 이 따뜻한 위로를 언젠가는 내 딸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그들이 세상에 홀로 서게 되었을 때, 나처럼 혼자서만 견디지 않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진짜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를 이끌지 몰라도,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늘 내 곁에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웃으며 거울 앞에 설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늘 혼자 버티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실감을 가지고 삶의 의욕도 없어 보이는 어머니 옆에는 믿을 구석은 나밖에 없었다.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었고,
내가 기댈 곳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언제나 복잡했다.
어머니는 혼자 삼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나는 그 마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 사이엔 깊은 애정만큼이나 깊은 갈등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에게 따뜻한 위로보다는 좀 더 강한 지지와 이해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늘 생각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에 치여 나 자신을 놓아버리고,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까지 나는 점점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
어느 날, 28살과 26살이 된 두 딸을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겁이 났다.
내가 어머니를 닮았듯, 아이들도 나를 닮아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까 봐.
그날 밤, 나는 거울 앞에서 오랜만에 나 자신을 마주했다.
지친 얼굴과 깊어진 주름이 보였지만,
내 마음속 진짜 질문은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정말 이렇게 살고 싶었나?’
답은 금방 나왔다.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나를 위해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딸들에게 내가 가르쳐주지 못한 것,
어머니가 내게 보여주지 못했던 것,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늦었지만 이제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작은 변화들이 시작되었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시 멈춰 나에게 숨 쉴 틈을 주었고,
내 피부를 돌보듯 내 마음도 쓰다듬었다.
하루 10분의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 쌓여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던 내면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신앙이 조금씩 메워주기 시작했다.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 삶의 무게를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내 마음을 차분히 적셨다.
그 후, 두 딸은 조금씩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엄마, 요즘 얼굴 좋아 보이네.”
어쩌면 나와 딸들의 관계도, 어머니와 나처럼 완벽할 순 없겠지만 나는 딸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마. 내가 너무 늦게 깨달은 것들을 너희는 조금 더 일찍 깨달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는 딸들에게 자주 말한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꼭 챙기면서 살아야 해. 누구보다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해.” 이 말이 딸들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 선다.
어쩌면 나는 아직 어머니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두 딸에게 완벽한 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이제라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거울 앞에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내 삶의 주름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 내 마음을 천천히 펴는 법을 배웠으니까.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서 나에게 조용히 미소 짓는다.
“잘하고 있어. 늦었지만, 이제라도 너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
이 작은 말이 내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시키는지
이제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