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뭐든 경험할 수 있다지만 결국 알아야 누리는 문화 자본

나의 영어 방학: ‘미란다’와 ‘해리 포터’를 중심으로

어릴  우리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다. 책도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다기보다는 그냥 책의 우선순위가 그다지 높지 은 환경이었다고 해야   같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슬슬 유행을 타던 초등학생 시절, 주변에서 드문드문 그런 게 있다더라, 얘기 정도나 듣던 이 이야기에 이렇다 할 흥미가 쌓이지 않은 탓인지 나는 성인이 된 후에야 이 책을 완독했다.


해리 포터에는  뜻이 없었지만, 대신 당시 나는 아주 가끔 삼촌댁에 가면 책장에 줄줄이 꽂혀 있던 ‘월리를 찾아라시리즈에 제법 심취해 있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아주 가끔 삼촌댁에 가야만 펼쳐   있는 책이었기 때문에  경험을   귀하게 여긴  같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대한 일종의 보상 심리로, 회사 생활하던 시기에 히드로 공항 WHSmith에서 남은 파운드를 탈탈 털어 《월리를 찾아라》 시리즈를   사온 일이 있었지만,  년쯤 갖고 있다가 결국 얼마 전에 조카에게 주었다. 아무것도  하고 그냥 나이만 먹었을 뿐인데, 월리가 그냥 너무 눈에  보여서. 나는 어떤 책을 읽는 데 나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쪽이긴 하지만, 때로는 독서에도 때가 있기는 한가 보다.


요즘 TV에서 종종 ‘해리 포터시리즈를 활용한 광고를 보다가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문화적 자본이랄  별로 없고, 책장에 꽂힌 책을 거듭해서 읽고  읽으며 보냈던 시절이.


지금이야 책도  맘대로   있고, 사는 방법 외에도 읽고 싶은 책을 하는 나만의 방법을 다양하게 터득했다. 그리고  취향의 책을 고르는 안목도 훨씬  발전했고, 내가 원하는 문화적 자원을 찾아 감상하는 일에도 훨씬  능숙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내 환경이 더 잘 갖춰질수록 이런 혜택을 누리는 일이 모두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짙어진다.


그래서 어느  ‘해리 포터 유행이 아니라 고전에 속하게  2020년대, 여전히 ‘해리 포터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광고를 보면서 문득 들었다. ‘해리 포터자체의 문제라기보단 문화적 경험을 전해  만한 어른이 주변에 없는 청소년들을 떠올리면 그냥 어릴   모습이 적당히 왜곡  미화된 방식으로 떠오른다.


견딜 만한 결핍은 인간이 이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결핍을 결핍으로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이미 그 속에 깊이 잠겨 있는 삶에서, 문화의 힘을 통해 아주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아채고 나아가 각성하며 내가 속한 세계 속에서 변화를 꾀하려면, 적어도 구성원들이 새로운 세계가 존재함을 일깨우는 기회 정도는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책을 어렵지 않게, 만만하면서도 재밌는 수단으로 느끼게 할지, 이런저런 인식 개선 시도를 쫌쫌이 해 보려고 한다.


책 못지 않게, 영어 역시도 내게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존재인데, 단순히 유창한 영어 실력을 쌓는 것 이상으로, 영어를 통해(혹은 또 다른 언어를 통해)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기회를 만나면, 우리의 삶은 ‘상전이’를 일으키며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는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고 익히는 일에 유독 관심이 많다. 단순히 시험 성적을 위한 일시적 ‘공부’가 아니라, 영어라는 범용성 도구를 잘 활용하는 법을 익혀 재밌는 기회와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많이들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나부터도 그런 삶을 꿈꾼다.


이런 마음으로 올여름에는(이제 약 한 달이면 금세 또 가을이 되겠지만) ‘영어 방학’이란 걸 해 보기로 했다. 방학을 한 번 지내고 오면 어딘지 확 바뀌어 있던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도 영어를 좀 집중해서 듣고, 말하고, 읽고, 써 보려는 계획인데, 사실 한참 전부터 생각만 해 놓고 정작 실행은 좀 뜨뜻미지근하게 이어지는 중이기는 하다. 이번 주부터는 좀 더 집중해서 하려고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보고 있다.


‘영어 방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트콤 〈미란다〉  섀도잉과 함께, 《해리 포터》 시리즈를 독파할 야심찬 계획도 세워 봤는데, 잘 될는지 모르겠다. 이 기세로 가다가는 방학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그래도 틈틈이 진행 상황을 콘텐츠로 만들어서 이리저리 전파해 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어제의 영광도 오늘의 오욕도 모두 해프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