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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리 Oct 17. 2022

고등학생 노동인권 교육

고맙다.

내적 친밀감이 높은 노무사님 소개로 올해 하반기부터 학교 노동인권 교육을 하고 있다. 대부분 직업계고(특성화고 등)에서 교육을 하지만, 일반계고(이름이 별로긴 하지만 수적 우위에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에서도 교육하고 있다. 5번 밖에 되지 않은 교육으로 요새 나를 돌아보고 있다.


첫 교육은 동대문구에 있는 일반계고에 재학하는 직업반이었는데, 월요일과 금요일에만 학교에 등교하고 다른 날에는 직업교육을 듣는 학생들이었다. 그 덕에 서로 잘 만나지 못해 그들끼리도 데면데면했다. 7~8명밖에 되지 않아서 더 난감했다. '노동' 이 단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럴 때일수록 나를 구제하는 히어로가 있는 법. 학생 한 명이 눈을 계속 마주친다. '그래! 됐어!' 그렇다면 준비한 대로 <1.질문과 퀴즈, 2.경험담을 곁들인 이후의 영상 시청, 3.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핵심으로 좁혀 들어간다. 4.끝으로 그들을 응원한다.>를 하면 되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먼 세계의 고등학생들은 현실의 고등학생과는 달랐다. 그날, 히어로 학생 한 명을 빼고는 핸드폰을 만지거나 잤다. 그리고 정규수업시간이 아닌 시간에 무심했던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좀 잘 들을걸..


첫 번째 수업 실패 이후 아찔한 기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비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학생들도 아침 일찍 등교해서 4시가 되어야 하교하는구나. 이건 직장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데?' 두 번째 수업은 비교가 추가되었다. '여러분! 아침 일찍 등교해서 4시에 하교하죠? 직장인도 같아요.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해요. 더 심해요! 학교 졸업하면 저처럼 됩니다!' 공감(?)을 이끌어내고, 자조 섞인 농담을 건네 집중할 무렵 핵심을 와다다 쏟아냈다. 노동인권, 산재, 일과 생활, 저임금, 왜곡된 노동 등등... 나름 성공적이었고, 이 방법을 좀 더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의 수업은 조금 덜 애먹었다. 화기애애한 수업 분위기에 스스로 만족 비스무리한 감정도 느꼈다. 그러면서 조금 두려운 감정도 들었다. 혹시라도 '노동'에 심취하여 활동가가 되는 학생이 생기면 어떡하지?(김칫국) 내가 빚질 사람이 한 명 더 생기면 어떡하지?(원샷)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해서 어떡하지?(이제 와서?) 결론은......뭐 아무렴 어때?(책임감 없음)


학생들에게 고맙다. 잘 들어줘서, 잘 웃어줘서, 적당히 무시해줘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해줘서, 그 시절의 나를 일깨워줘서. 요새 조금 더 깨어(?)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학생들 덕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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