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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리 Nov 29. 2021

출퇴근길 구의역

출퇴근 길에 구의역을 지난다. 


잠실 - 잠실나루 - 강변 - 구의역 - 건대입구로 이어지는 출근길은 참 아름답다. 면접을 보러 처음 회사로 가던 날, 2호선 열차가 지하에서 벗어나 한강을 비출 때의 짜릿한 감정을 잊지 못한다. 이런 회사라면 출퇴근길은 심심하지 않겠거니 스스로 생각했다.


그랬던 회사를 벌써 1년 반 가량 다니고 있다. 비가 유독 많이 왔었던 이번 여름에는 올림픽대교와 잠실대교 바로 밑까지 물이 출렁거렸고, 유독 추웠던 올 1월에는 한강물이 꽁꽁 얼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한강 풍경을 뒤로하고 강변을 지나 구의역에 다다르면 뭉클한 마음이 앞선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구의역 사고는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면서 다시 부각"되어졌다". 노동계에 종사하는 나 또한 잊고 지냈던 사건이니만큼 일반인이 잊고 살기란 또 얼마나 쉬우랴. 자아비판과 동시에 인간의 본능을 탓해본다.


우리 사회에서 구의역사건은 노동현실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줬던 일이었다. 구의역 김군의 추모를 위해 놓였던 라면과 레토르트 식품이 아직 눈에 선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이와 관련한 불씨가 다시 살아난다. 김군 사건 때 그랬고, 당진 용광로 사건에서는 본명을 알 수 없는 댓글 시인 제페토가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불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과 관련하여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차가 상당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부실하여 노동자의 '안전권 확보'라는 대전제에 과연 부합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끊이지 않는 반면, 한쪽에서는 국가형벌권을 남용하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경영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자유로 인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나 그 자유가 개인의 안전을 넘어 생명마저 위협한다면 국가가 통제하여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개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벌할 권한을 국가가 갖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경영할 자유를 생명의 존엄에 빗대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특별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제정 때에는 이 법의 화제성으로 무거운 논쟁이 오고 갔을 것이고, 이에 한쪽으로 치우쳐진 법률안보다 중도 입장의 법률안이 됐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 법으로 강제한다고 산업재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산업재해 발생을 감소시키자는 취지로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당연히 도입되어야 하는 법이다. 역설적이게도 입법 이후 산업재해 빈도가 감소하지 않는다면 법은 더욱더 강하게 개정될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의 법 개정이 없길 바라며, 구의역을 지날 때 참담한 기분을 다시 빨리 망각하길 바라며, 오늘도 퇴근길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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