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우메키타 공원에서 배운 것
JR 오사카역 북쪽 출구를 나서자, 회색 유리 빌딩 숲 사이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도심의 열기를 씻어내듯 거대한 녹색 캔버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은 격식 없이 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잔디 언덕을 뒹굴며 웃었다.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도시 한복판에서, 그 순간만큼은 온도가 한순간 낮아지는 듯한 경험이었다.
이곳은 오사카의 새로운 심장, 우메키타 공원(Umekita Park)이다. 과거 화물열차가 드나들던 철도 부지를 완전히 비워내고, '도시 안의 생명 순환'을 되찾기 위해 탄생했다.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고 그 기능을 재설계하겠다는 대담한 실험이다. 이는 '경관 최우선(Landscape First)'이라는 새로운 도시 설계 철학의 실현이었다.
우메키타 공원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전통적인 조경과 다르다. 미국 시애틀의 조경회사 GGN(Gustafson Guthrie Nichol)은 이곳을 '도시의 새로운 폐(lung)'로 정의했다. 도시는 늘 빠르게 움직인다. 자동차, 전철, 사람, 광고, 빛. 그 속도와 소음에 지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기'였다. 숨 막히는 일상에 여유의 리듬을 불어넣는 것이 핵심이었다.
GGN은 부지의 절반에 가까운 4.5만 ㎡를 공공 녹지로 할애하며, 약 320종 1,500여 그루의 토착종 식생을 조성했다. 이는 도시의 미세먼지를 줄이고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생태적 폐' 기능을 수행한다. 오사카가 '물의 도시'였음을 상징하듯, 공원 내 수변 공간은 도시의 건조함을 해소하는 중요한 장치다.
이 녹색의 대지 위를 흐르는 곡선형 캐노피는 일본 건축가 SANAA의 작품이다. 은빛 징크로 마감된 이 구조물은 주변의 직선적인 유리 빌딩 속에서 부드러운 곡률로 흐른다. 이 곡선은 "이곳은 여유와 사색을 허락하는 도시"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시민들에게 물리적인 그늘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빛과 그림자, 바람과 발소리가 캐노피 아래에서 교차하며 도시의 숨결에 휴식의 리듬을 불어넣는다.
한국의 많은 도심 공원이 멀리서 '감상하는 풍경'에 머무른다면, 우메키타는 시민들이 스스로 시간을 소비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잔디광장 한가운데 앉으면 사방에서 여러 소리가 희미하게 섞인다. 기타 소리, 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도시의 먼 소음. 누군가는 노트북을 펴고 일에 몰두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잔다. 공원이 자연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도시민의 일상과 노동, 휴식이 교차하는 거대한 '실내' 공간처럼 느껴진다.
GGN은 이 공원을 "체류의 디자인"이라 명명했다. 얼마나 오래 머물고 싶은가, 그 시간이 곧 공원의 품질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낮은 벤치와 공원과 직접 연결된 카페의 열린 테라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깊숙이 들어와 시간을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들이다.
나는 그날 한참을 잔디 위에 앉아 있었다. 도시의 소음이 점점 멀어지고, 머릿속에는 모처럼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은 나에게 허락된 사치였고, 일상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만의 고요한 리듬을 되찾아주는 귀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공원들은 왜 이런 '체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서울의 경의선숲길이나 서울로7017은 '지나가는' 공간으로 설계되었고, 여의도공원이나 올림픽공원은 너무 넓어서 오히려 머물 곳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의 도시계획은 여전히 '효율'과 '동선'을 우선시하며, 시민의 '느림'과 '머무름'을 배려하지 않는다.
우메키타의 진짜 가치는 미학을 넘어선 도시의 회복력(Resilience)에 있다. 이 공원은 평상시에는 휴식 공간이지만, 재난 시에는 대피공간이자 자립 공간으로 기능한다.
공원 지하에는 비상전력 공급 시설이, 곳곳에는 맨홀 뚜껑을 열어 긴급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는 설비가 마련되어 있다. 빗물 재활용 설비와 음용수 공급 시설까지, 도시 기반시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아름다움'이 아닌 '지속가능성'과 '도시 안전망'으로 평가받는 공공 공간. 이것이 오사카가 철도 부지에 채워 넣기로 택한 방향이다.
그러나 이 성공에는 그림자가 있다. 우메키타 공원의 탄생은 주변의 고급 상업·주거 복합단지 '그랑 그린 오사카' 개발과 궤를 같이한다. 공원은 공공재이지만, 그 가치는 결국 인접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오사카 시는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재원을 마련했지만, 이는 공원이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새로운 젠트리피케이션의 도구'로 작동할 위험을 내포한다.
실제로 공원 주변의 임대료는 개장 이후 급격히 상승했고, 기존 상인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공성과 자본의 논리 사이에서, 우메키타는 여전히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 점은 한국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서울역 북부, 대전역 철도부지, 창원 옛 산업단지 같은 곳에 유사한 공원이 들어선다 해도, 그것이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누구를 배제하는 공간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해 질 무렵, 주변의 거대한 유리 건물들이 노을을 반사했다. 그 빛은 결코 차갑지 않았다. 잔디 위에서 노트북을 덮는 이의 만족스러운 표정, 아이를 안고 집으로 향하는 부부의 미소, 그리고 친구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도시의 풍경에 따뜻한 결을 입혔다.
우메키타 공원은 호흡(폐), 체류, 회복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통해, 도심 속에서 새로운 생명 순환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도시가 시민들에게 숨 쉴 공간을 허락할 때, 비로소 도시민들은 그 공간에서 자신만의 온기와 활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온기는 다시 도시 전체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이 순환이 작동하려면, 공원이 단순한 '녹지 확충'의 결과물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도시의 안전, 그리고 사회적 공정성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설계의 산물이어야 한다. 우메키타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자본의 논리 앞에서 공공성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드러냈다.
나는 그날, 도시를 사랑하는 또 다른, 더 깊은 이유를 배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 사랑이 비판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