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빽빽한 세계에서 우리는 왜 웃는가
2만 원이 나왔다. 분명 세 개만 살 생각이었는데. 계산대 앞에서 나는 늘 같은 표정을 짓는다. 손에 든 건 대부분 계획에 없던 물건들이다.
내가 다니는 골프 연습장은 한 건물의 3층에 있다. 연습을 끝내면 몸은 늘 집으로 향하지만, 발걸음은 어김없이 2층 다이소 앞에서 멈춘다. 급히 필요한 것도, 꼭 사야 할 것도 없다. 그냥 한 번 들러볼 뿐이다. 그리고 30분 뒤, 나는 어김없이 작은 웃음을 짓고 있다.
다이소는 단순한 잡화점이 아니다. 좁은 통로와 3만여 종의 물건, 익명의 사람들로 가득 찬 소비 심리의 작은 실험실이다.
문을 여는 순간 느껴지는 건 압도적인 밀도. 천장까지 물건으로 가득 찬 좁은 통로. 백화점이 만들어주는 사회적 거리 대신, 다이소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정의한 개인적 거리로 바로 파고든다.
낯선 사람과 팔이 스칠 만큼 가까운 거리. 분명 불편한데 이상하게도 자유롭다. 모두가 자기 물건을 찾느라 바빠 ‘시선’이 사라진다. 시각적 자극이 과밀한 공간에서 오히려 발견의 쾌감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불편함 속에서 익명이 자란다. 5천 원짜리 인형을 들고 한참을 고르고 있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순간 다이소는 쇼핑이 아니라 탐험이 된다. 고가 소비가 망설여질 때, 이곳의 쇼핑은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허락이다.
다이소에는 3만여 종의 상품이 있다. 대부분 5천 원 이하.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는 이 작은 금액 앞에서 오히려 더 신중해진다. 수백만 원짜리 계약은 단번에 결정하면서, 천 원짜리 세제와 칫솔의 품질 차이에는 몇 분을 쓴다.
천 원짜리 세제를 고민하는 3분 동안, 나는 사실 '이 돈을 허투루 쓰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애쓴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가 말한 마음속 회계다. 사람들은 큰돈을 투자 계정에 넣어 쉽게 쓰고, 작은돈은 용돈 계정으로 인식하여 더 많은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선택지는 끝이 없다. 배리 슈워츠의 말처럼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우리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결정 피로에 시달린다. 결국 사람들은 완벽한 선택을 포기하고 '이 정도면 됐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차피 싸니까." 그 말은 합리화 같지만, 실은 스스로를 설득하고 피로를 해소하는 방식이다. 나 역시 계획한 세 가지를 담고, 즉흥적으로 네 가지를 더 얹는다.
다이소의 힘은 가성비뿐이 아니다. 배치 자체가 유혹이다. 입구 계절 코너는 ‘일단 하나만’이라는 생각을 심고, 주방용품 옆의 인테리어 소품은 ‘이것도 필요할지 몰라’라는 착각을 만든다. 좁은 통로 속 모든 우연은 사실 설계된 연출이다.
충동을 계획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걸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믿는 소비자. 이 묘한 균형이 계산대 앞 웃음으로 수렴된다. “이 정도 샀는데 왜 2만 원이지?” 그 웃음은 죄책감이 아니라, 작은 자유를 누린 사람의 표정이다.
다이소에 자꾸 가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여기서는 작은 돈으로 선택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천 원짜리 물건 앞에서 몇 분을 망설이는 일은 비합리적이지 않다. 그건 내 삶을 잠시 축소시키고, 조그만 통제권을 되찾는 행위다.
거대한 세상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적다. 하지만 이 작은 가게 안에서는 모든 결정이 내 손끝에서 갈라진다. 그 사소한 선택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다이소는 3만 개의 물건으로 쌓인 미로다. 하지만 이 미로는 길을 잃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발견들로 일상의 무게를 잠시 잊게 하는 곳이다.
그리고 계산대를 나서는 순간, 나는 안다. 내가 산 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30분간의 통제감, 천 원짜리 자유, 그리고 “이 정도면 됐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여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