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를 보내며
프랭크 게리가 세상을 떠났다. 2025년 12월 5일,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자택에서 향년 96세를 일기로.
부고를 접한 순간, 시간은 학창 시절의 어느 강의실로 되감겼다. 칠판 위로 쏟아지던 수많은 건축 사조들 사이에서, 유독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던 이름. 당시 우리에게 그는 '해체주의(Deconstructivism)'라는 낯설고도 강렬한 어휘와 함께 소개되었다. 비록 그 자신은 평생 그 레이블을 거부했지만.
그 시절, 우리가 발 딛고 있던 한국의 도시 풍경은 온통 수직과 수평의 엄격한 질서뿐이었다. 네모반듯한 아파트와 효율성만을 강조한 빌딩 숲 사이에서 자란 우리에게, 게리가 보여준 비정형의 건축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력에 대한 반란처럼 보였고, 고정관념을 부수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뒤, 서울 동대문에도 대규모비정형 건축이 들어섰다. 2016년 세상을 떠난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우리는 비로소 교과서 속 건축을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게리와 하디드가 그려낸 곡선의 결은 사뭇 달랐다. 게리의 건축이 금속을 구기고 비틀어 만든 불규칙한 파편들의 콜라주라면, 하디드의 건축은 매끄럽게 흐르는 유체의 연속이었다.
빌바오 구겐하임의 티타늄 조각들이 서로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역동성과, DDP의 매끄러운 곡면이 땅에서 솟아오르듯 펼쳐지는 유려함. 같은 해체주의라는 이름 아래 묶이지만, 한 사람은 폭발하는 에너지를, 다른 한 사람은 흐르는 시간을 건축으로 번역했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그 금속 표면들은, 건축이 정지된 조형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젊은 건축가 지망생들에게 그는 '실현된 동경' 그 자체였다. 우리는 밤새 제도판 위에서 기이한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그건 그림일 뿐'이라는 말 앞에서 상상은 자주 좌절되었다. 구조의 합리성과 시공의 한계라는 벽 앞에서, 우리의 스케치는 종이 위에 머물렀다.
프랭크 게리는 바로 그 불가능의 경계를 가장 먼저 넘어선 사람이었다. 그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스케치북 위의 난해한 선들을 기어이 대지 위에 세워 올렸다. 항공기 설계 기술을 건축으로 옮겨와 불가능해 보였던 곡면을 현실로 구현한 그의 방법은, 건축이라는 행위가 기술을 통해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쾌거였다.
물론 그 과정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치밀한 구조 계산과 예산 조율, 클라이언트와의 끝없는 협상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비전을 끝내 관철시켰다.
건축의 최고 영예인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을 1989년에 받은 것은 빌바오 구겐하임(1997) 이전이었지만, 그의 진가는 이후에야 완전히 드러났다. 그는 건물을 기능적인 상자에서 해방시켰고, 도시의 풍경을 단조로움에서 구해냈다.
빌바오 구겐하임이 쇠락해가던 공업 도시를 변모시킨 것은 단순히 건축물 하나의 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건축이 도시 재생의 촉매가 되었다는 것, 공간이 가진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증명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게리는 이제 떠났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우리 곁에 여전히 또렷하다.
‘건축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는 평생을 바쳐 그 질문에 온몸으로 답했다. 익숙한 직선을 깨뜨리고, 타협하지 않는 곡선을 기어이 현실의 공간으로 끌어온 그의 용기가 우리 시대의 건축을 진보시켰다.
그의 건축이 때로 유지보수 비용이 높고 실용성 논란에 휩싸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건축이 단지 효율과 기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공간이 우리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공로는 결코 작지 않다.
이제 그의 부재를 인정해야 할 시간이지만, 세계 곳곳에 흩어진 그의 유산들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빛나고 있다. 어떤 건물은 도시를 비추는 거울처럼 서 있고, 또 어떤 건물은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파도처럼 춤을 춘다.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콘크리트와 철이라는 무거운 재료를 만나 얼마나 멀리 날아오를 수 있는지를.
도면 위의 꿈을 현실의 대지에 굳건히 심어놓고 떠난 거장, 프랭크 게리. 그가 남긴 굽이치는 곡선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그의 길고 치열했던 여정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부디 그곳에서는 중력조차 없는 자유 속에서, 멈추지 않을 춤을 추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