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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14. 2024

사춘기 딸에게 데이트를 신청했습니다

 딸과 가까워지고픈 아빠의 간절한 바람

"아빠랑 영화 보러 갈 거야?"


식탁에서 밥을 먹는 아이에게 물었다. 두 근 반 세 근 반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신경은 오롯이 딸의 오물거리는 입술로 향했다.


답이 없다. 속이 탄다. 차가운 물이라도 들이켜야 속이 진정되려나. 딸은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밥그릇에만 정성을 쏟고 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그래 좋아."

"우와! 진짜지? 아빠 바로 예매한다. 점심때가 좋아? 저녁때가 좋아"

"음.... 저녁때."

"그럼. 저녁도 같이 먹자."

"알았어."


야호.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을 가라앉히고 얼른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다. 마침 저녁 6시와 8 시대가 있었다. 얼른 딸에게 달려가 물었더니 손가락으로 후자를 가리켰다. 시간 컨펌도 받았겠다 그 자리에서 예매완료 버튼을 눌렀다. 저녁은 무얼 먹을지 생각해서 알려달라고 했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에 돌아와서도 한 동안 설레는 마음을 주체 못 했다.


사실 빼빼로데이 때 집에 가기 전, 딸이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을 선물로 사갔다. 굳게 닫힌 방을 두드리며 잠시 나오라고 했더니 문을 열고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그때 등 뒤에 숨겨 둔 초콜릿을 내밀었다. 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반달눈을 가득 뜬 채 기뻐했다. 방에서 나와 내 옆에 앉아 숨겨 둔 애교를 대 방출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슬쩍 주말에 함께 영화 보러 가자고 했다. 선뜻 답을 하지 않길래 핸드폰을 꺼내 보려고 하는 영화 예고편을 틀었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곤 수요일까지 생각해 보고 답을 주겠다고 했다.  


언제나 살갑고, 집에서 밝은 분위기 담당이었던 딸이 사춘기 구간에 진입하고선 급변했다. 눈에 띄게 말수가 줄고, 거리 두기를 했다. 그래도 아내와는 대화를 하는데 아빠인 나는 찬밥이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도 딸이랑 이야기 많이 하고 싶은데 섣불리 다가설 순 없었다. 아들 사춘기 때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은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냉가슴만 앓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가끔 기분 좋을 땐 예전으로 돌아가기도 해서 그때를 놓치지 않고 꼭 붙어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목이 말랐다.   


소중한 딸과의 데이트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는 요즘 핫한 '청'이다. 마침 내용도 몽글몽글한 사랑 이야기이기에 분위기도 좋을 것 같다. 요즘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는 듯싶은데 영화 보고 나서 자연스레 화두를 펼쳐보아야겠다.

얼른 주말이 찾아오면 좋겠다. 오래간만에 딸과 맛있는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며 못다 한 이야기도 실컷 나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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