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책 북클럽' 독서모임 송년회가 열렸다. 회원 중 한 분이 개인 공간을 갖고 있어서 얼마 전부터 그곳에서 송년회를 하고 있다. 이번에도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주신다고 해서 감사했다.
송년회 당일 침대와 거의 한 몸이 되어 어쩔 줄 몰랐다. 전 날 과음으로 술이 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오니 술자리가 잦았다. 마음 한편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과 술 한잔 하며 한 해 마무리 하는 건 소중한 일이기에 연일 간에게 미안함을 더한다.
오후가 돼서야 침대와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무거운 머리를 이끌고 세면장으로 향했다. 살짝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침 고기는 사라진 해장국 국물이 남아, 한 입 뜨고 속을 달랬다. 송년회 장소는 은평구인데 다행히 집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앱으로 시간 맞추어 나가 여유 있게 출발했다.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엉덩이를 길게 빼고 머리를 뒷좌석 쿠션에 데고 눈을 감았다.
얼마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두 정거장 전이었다. 삼십 분 정도 숙면을 취했다. 자세를 바로잡고, 내릴 준비를 했다.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앞에서 다른 회원을 만나 함께 공간에 들어갔다. 이미 도착한 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뷔페식으로 준비한 간식을 접시에 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꼬치에 직접 어묵을 꽃아 준비를 했다는데, 침대에 내내 머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간식을 먹으며 12월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올 해는 두 권 이상으로 된 고전을 읽었는데, 그 마지막은 빙점이었다. 송년회가 이어지기에 간단히 책을 읽은 소감과 캐릭터에 관해서 나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몇 번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연기했었다. 그만큼 인물들 간의 갈등이나 심리묘사가 탁월했다. 작가가 기독교를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했다는데, 인간의 부끄러운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 때론 읽기 불편한 지점도 있었다. 다른 회원들도 비슷한 의견이었고 공감 가는 지점이었다.
독서모임이 끝난 뒤 대표님은 손수 PPT를 준비해 와 '인생 책 북클럽'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나는 초창기 회원은 아니고 중간에 들어왔지만 벌써 4년이 다 되었다. 매년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책을 선정해 달마다 회원 한 분이 발제자가 되어 준비하는 포맷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그 역사 속에 나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이 크게 다가왔다. 내년엔 노벨상 수상 작가의 책을 읽기로 해서 순서를 정하며 마무리했다.
이어서 준비한 책을 가져와 회원들끼리 나눠 갖는 시간을 가졌다. 종이에 번호를 적어 차례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 손수 책 덮개까지 만들어온 분도 있어서 그 정성이 감사했다. 내가 고른 책은 토니 모리슨의 '가장 파란 눈'이었다. 언젠가 꼭 읽고 싶었는데 운명처럼 송년회에서 만나게 되었네. 마지막으로 올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종이에 적고, 지금 갖고 있는 책 속 문장으로 이어 답하는 이벤트를 가졌다. 처음 해보았는데 상당히 흥미로왔다. 운 좋게 내가 답한 것이 뽑혀서 선물도 받았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좀 더 머물다 나오고 싶었지만 피곤한 몸은 버틸 여력이 없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회원들에게 주고 싶은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사느라 지나친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주는 존재', 독서모임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일상에 묻혀 현재만 바라보고 살다가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서 회원들과 생각을 나누며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살아 있음을 느낀다. 먹고, 자고, 숨 쉬는 것 외에도 세상엔 의미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2025년도 독서모임으로 문을 열고, 책을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그런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