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현 Feb 17. 2022

베이비 버드

    어제저녁 도시락을 가지러 구내식당에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이곳 제가 일 하는 부지에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구내식당이 폐쇄되고 도시락을 받아서 손바닥만 한 작은 기숙사 방에서 홀로 먹습니다. 편의점 도시락처럼 정갈히 싸인 도시락을 받아 방으로 돌아오는 길, 구내식당 앞 주차장 바닥에 작은 솜털이 삐죽삐죽한 주먹 두 개만 한 아기새가 제 눈에 띈 것은 행운일까요? 마침 그쪽으로 트럭 한 대가 후진을 해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급하게 뛰어가 트럭 뒤를 막고 섰습니다. 그리고 저를 발견하고 멈춰 선 트럭 운전석으로 다가가 보니, 아마도 인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직원이 의아한 채 창문을 내렸습니다. 저는 다급히 뒤를 가리키며 “베이비 버드! 베이비 버드! 유어 타이어! 파킹! 베이비 버드!” 헐레벌떡 짧고 못난 영어로 외쳤습니다. 외국인 직원은 조용히 차에서 내리더니 제가 가리킨 아기새를 보며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니 아기새가 떨어진 곳으로 보이는 작고 허술한 둥지가 엿보였습니다. 함께 둥지를 가리키며 음, 음음 하고 언어 같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제가 어설프게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려 주었습니다. 채신머리없어 보이는 웬 조그만 한국인 여자애가 대체 뭘 하려 그러나 궁금해서 지켜보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근처 작은 슈퍼마켓에 가서 박스를 구해와서 혹여나 발에 밟히거나 차에 치일까 봐 새의 주변에 어설프게 둘러주었습니다만, 오히려 박스가 너무 높아서 어미새가 녀석을 찾지 못하게 될까 우려되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는 저를 바라보던 외국인 직원분께서 박스를 치우라고 손짓하시더니 망설임 없이 새를 움켜쥐고 옆의 기둥 옆 튀어나온 자리에 올려 두었습니다. 무릎께 정도의 높이인 곳에 아기새는 겁에 질린 것인지 다리를 다친 것인지 얌전히 잡으면 잡는 대로, 올려 두면 올려 둔 대로 가만히 앉아 있더군요. 어미새가 녀석을 찾을 수나 있을지, 어린 저였다면 걱정되어 근처를 떠나지 못했을 터이지만 이제는 제가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도움을 주신 외국인분께 땡큐!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점심 도시락을 가지러 다녀오는 길 아기새가 있던 곳을 다시 살펴보니 새는 없었습니다. 둥지를 엿보려 애써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쩜 너무 작고 허술한 둥지라 어느덧 커진 아기새를 견디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이기도 했고, 어미 새의 성격이 저랑 비슷한 것인지 둥지는 어째 열심히 만든 모양새가 아니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아기 새가 다친 곳 없이 괜찮을지, 어미를 다시 만났을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건지 걱정이 됩니다. 고양이가 워낙 많은 곳이니 고양이나 혹은 굶주린 사막여우가 물어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모른 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괴로울 뿐 실질적으로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곳의 고양이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고양이의 끼니를 챙겨주고, 누군가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느 쪽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납득이 갑니다. 그 고양이의 평생을 책임질 것이 아니면 고양이의 야생성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에도 마음이 많이 기웁니다만,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사는 동안만이라도 든든히 먹게 해주는 게 무엇이 나쁘냐 물으면 또 그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그러다 보니 한쪽 다리가 없어서 제 마음을 저리게 하는, 제가 끼니를 챙겨주고 있는 고양이 녀석에게 제가 잘해주고 있는 것인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마음은 늘 흔들리지만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사료를 챙겨 그 자리로 향하게 됩니다. 하는 수 없습니다. 이 녀석은 이미 어린 날부터 많은 이들이 밥을 챙겨 주었기에 끼니때가 되면 사람을 기다립니다. 이 녀석만 챙겨주자, 챙겨주자 하던 것이 두 달이 넘어갑니다. 이제 녀석은 저를 기다리게 되어버렸으니까요. 그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이치에는 어긋나지만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도리에는 걸맞은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어디에도 어긋나지 않는 일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저는 이제 복잡하게 생각할 시간에 운동화를 신고 걸어 나가 ‘미야, 미야.’ 하고 저를 찾는 녀석에게 밥 한 끼를 챙겨 주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오늘은 이 고양이의 배가 부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