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현 Feb 24. 2022

카페인 과다복용

    운동부족과 영양 불균형을 동반자 삼은 저의 불규칙한 생활습관 탓에 계절마다 독한 감기몸살을 앓고는 합니다. 작년 12월 즈음에도 그렇게 아팠던 저에게 남자 친구가 부지 내의 슈퍼에서 해열진통제를 사다 주어 그걸 매일 8알씩 먹었습니다. 한데 몸이 나아지기는커녕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잠들기가 어려웠고, 잠들면 꿈을 꿨습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꿈에서 하던 말을 그대로 입 밖으로 뱉으며 잠에서 깨어나기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선명한 꿈속에서 무언가 주절주절 말하다가 눈을 떠보면 허공을 향해 손을 뻗고 소리 내 말하고 있는 제 모습이 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말입니다. 소름이 끼쳐왔습니다.


    내 정신병이 이토록 심해진 건가? 어지러운 생각과 함께 밤이 되는 게 무서웠습니다. 잠들지 못하니 수면보조제를 더 많이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꿈과 현실의 혼동은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에 계신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다급하고 길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너무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몸은 낫지 않고 잠을 잘 수 없다는 애원에 복용량을 늘려도 좋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약을 아무리 늘려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갈수록 몸 상태가 있는 대로 악화되어 기침을 하다 피를 뱉어내고, 일도 하기 어려운 수준에 달하자 근처 병원을 찾아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아 왔습니다. 


    처방받아 온 약은 남자 친구가 사다 준 약과 동일한, Adol이라는 제품이었는데 포장재 색깔만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달랐습니다. 성분이 뭐가 다른 건가? 하고 뒤편을 자세히 보니, 남자 친구가 저에게 사다 준 약에는 동일한 성분에 카페인이 추가로 첨가되어 있었습니다. 약 이름은 Adol Extra. 이 ‘Extra’ 란 부분이 카페인이 첨가된 진통제에 붙는 말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아랍의 진통제는 대부분 이렇게 기본 유형의 진통제와 Extra 유형의 진통제가 있더군요.) 그것도 보통 수준의 카페인 함량이 아니었습니다. 한 알에 65mg의 카페인이 첨가되어 있었고, 이걸 매일 8알씩 먹었으니 하루에 520mg의 카페인을 섭취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한 때 밤샘용으로 학생들 사이 유행했던 스누피 커피우유가 500ml 기준 237mg의 카페인이 들어있어 고 카페인으로 유명했는데, 그걸 하루에 1리터도 넘게 마신 꼴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잠들 수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얕게나마 잠든 것이 용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약을 끊으니 그날 밤부터 차차 평화가 돌아왔습니다. 꿈도 깸도 없이 잠을 잘 수 있었고, 잠을 자니 금세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려주며 약을 보여주니 남자 친구가 어쩔 줄 몰라하며 약상자를 꽉 쥐어 구겨 버렸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요. 그런 그에게 저는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바보라 놀리지도 못하며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도 온전하지 못한 감정이 들었기에 어느 쪽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어깨를 다독여줄 뿐이었습니다. 아픈 저를 위해주었던 마음만 받았습니다. 그 수밖에 없었으니 말입니다.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안심되었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잠들지 못하면 몸과 정신이 얼마나 망가지는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푹 잘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온전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 지 모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이비 버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