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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영 Jan 30. 2024

21.구씨는 알콜중독자가 아니다

-고급이상심리 성찰일지11

뜨겁던 주말 드라마‘나의 해방 일지’가 16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일명 ‘구’며 든다, 추앙한다 등의 신조어를 남긴 채 아쉽게 떠나 버렸다. 이때 ‘구’는 당연 우리의 ‘구씨’, 즉 구자경을 말한다. 여기에 ‘스며든다’는 말을 붙여 ‘구며 든다’는 말은 즉 구씨에게 나도 모르게 저절로 빠져든다는 의미이다.     

구씨는 드라마 중반까지는 대사도 별로 없고 쌍거풀 없는 눈만 껌뻑껌뻑 하는게 다였다. 그런데 하루일과를 안주없는 깡소주를 마시는 걸로 마친다는 것밖에는 어떤 특징도 없어 지루하기까지 했다.     

구씨는 한 방 가득 초록색 술병을 모으듯이 세워두고 산다. 누군가 그 초록병을 치울라치면 버럭하며 마치 자신의 배설물을 남이 대신 치워준 듯 못마땅한 얼굴을 한다. ‘구’씨에게 술의 의미는 뭘까? 초록병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시도 해방될 수 없을뿐 아니라 숨쉴수도 없고 잠들수도 없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간다. 그에게 술은 그 당시 잠시의 ‘해방’을 준 것은 아닐까? 구씨에게 동네사람들은 공공연히‘알콜중독자’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것이 편의점 주인은“ 웬만하면 한꺼번에 4병 사가라며 귀찮지 않냐?”고 쏘아뿥이기 일쑤다. 막내여동생이 구씨와 사귄다고 하자 오빠가 펄쩍 뛰며 말린다. 구씨가 알콜중독자라고.     

그러나 술에 의존해서 사는 구씨지만 아침에는 멀쩡히 산포싱크대 공장에서 목늘어난 셔츠를 흠뻑 적시며 일한다. 게다가 하루 종일 말없는 사장님과 팀웍도 제법 잘 맞는다. 무려 신임까지 받으며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흔한 ‘알콜중독자’는 아니다. 대인관계문제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장님의 텃밭 일은 임금을 받지 않겠다고 당당히 선언할 줄 안다. 그 이유인즉슨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돈 안받아요”라며 말이다. 어쩐지 이세상 만만한 월급쟁이 느낌 아닌 듯 연연해하지 않는 모습이다.               

Jellinek(1952)의 4단계론은 말한다. 첫째, 전 알코올단계(Prealcoholic Phase)는 사교적 목적으로 긴장을 해소하고 대인관계가 원활해지는 긍정적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둘째, 전조 단계(Proeroal Phase)는 음주의 양과 회수가 증가하고 과음과 필름끊김 현상(Black Out)이 발생한다. 셋째, 결정적 단계(Crucial Phase)는 아침에도, 혼자서도, 식사를 거르고라도 술을 마시며 빈번한 과음으로 부적응이 생긴다. 통제력이 일부 남아 있어서 며칠간 술을 끊을 수는 있다. 넷째, 만성 단계(Chronic Phase)는 내성, 금단 증상이 나타나며 술을 마시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위 이론에 따르자면 ‘구씨’는 철저히‘만성 단계’가 확실하다. 살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해 사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치료가 시급한 단계라 할 수 있다.     

술에 의존해서 살던 그는 ‘추앙하라’는 염미정의 주문을 받았다. 그후 말도 안되는 멀리뛰기를 시도할 힘이 생겼다. 구씨가 살던 절망의 세계에서 염미정과 함께 살아갈 희망의 세계로 멀리뛰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를 추앙하는 힘은 고된 시련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염미정 마저 복수의 나락에서 끌어올린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개선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저 추앙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우리 삶에는 눈만 뜨면 아니 눈을 감아도 생각나서 끈질기게 괴롭히는 문제가 하나씩은 있다. 그럴 때마다 비난하고 회피만 할 것인가? 더구나 끊을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를 더 날카롭게 혐오할 것인가? 오늘부터 나는 나를 환대하기로 했다. 아니 추앙하기로 했다. 문제 앞에서 도망가지 않고 직면하며 하루하루 삶에 적응하며 살기로 노력하는 나에게 친절하기로 했다. 구씨처럼, 미정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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