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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영 Jan 30. 2024

22.인간은 누구나 한 알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상담 성찰일지1

 “ Si Vales Bene, Valeo.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지냅니다.”입으로 소리내어 말해보니 어감도 우스꽝스러운 라틴어 인사말이다. 청소년 상담학! 무려 한학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수강인원 부족을 이유로 개강자체가 불투명 했었는데, 무려 13명이나 함께 한다. 시작부터 내 옆자리 한사람의 소중함을 실감했다. 기다린만큼 이 과목에 거는 기대가 크다. 게다가 교수님은 우리 과 1기 선배란다.          

“아이들은 누구나 꽃이다”올해부터 몸담고 활동하는 강북혁신교육지구 마을교사팀의 모토이다. 그렇다.“인간은 누구나 꽃피워야할 씨앗을 품고 태어난다.” 다만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십대, 청소년시기 그야말로 반론의 여지없이 반짝반짝 꽃망울이 맺히는 시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망감’에 빠져지내는 아이들이 많다. 아무 소망도 기대도 설렘도 없이 산다. 그냥 살기 위해 사는 삶에 급급한 경우가 허다하다.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한때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잘난 집 아이들도 다를 바 없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주인공도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생명을 무참히 내동댕이 쳐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아이들은 단지 존중받고 싶었던 것 뿐인데 말이다.     

과연 진정한 상담자의 자질은 무엇일까?      

칼 로저스(Carl Rogers, 1902-1987)는 말한다. 첫째 일치성이다.“겉과 속을 달리하지 않음이다.” 즉 매일 자기성찰을 기본으로, 자기의 한계를 깨달아 수용할 줄 알뿐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신뢰까지 해야 한단다. 한마디로‘척하지 말라’는 말이다.  자기기만의 일상이 떠올라 자괴감이 밀려 온다. 둘째 공감성(emphathy)이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 즉 내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상담은 상대에 대한 동감정도가 아니라 공감의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하단다. 역지사지의 태도 말이다. 많이 양보해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동감정도의 수준이다. 셋째 무조건적 수용적 존중이다. 예쁜 짓을 해야 예쁘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바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상식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조건없이 존중하는 것이 상담이란다. 결론적으로 어설프게 ‘신의 영역’에 잘못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하나? 고민이 스물스물 고개를 치켜 든다.     

한마디로 나는 상담자의 자질이 1도없는 인간이구나! 하나같이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만 같다. “그렇게 간절히 과목 개설을 기다려왔건만 여기까지가 끝인가보다. 미안하지만, 상담이여. 안녕”      

그런데 교수님이 갑자기‘상담자의 지혜’를 말씀하신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상담자는 ‘모름의 지혜’를 인정해야한다. 상대방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모르면 질문을 하시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실수하기 때문이다. 또한 ‘변함의 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내담자는 자기자신만의 고유한 씨앗을 가지고 있다. 때가되면 꽃을 피우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한다. 지금 보고 있는 내담자의 모습이 다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초월의 지혜’다. 바로 죽음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오늘살이의 인간이다. 내가 있는 시, 공간을 벗어나서 상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대박 반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 ‘1교시부터 줌을 통한 수업을 해서 힘들어서인가? ’확실히 그건 아니다.      

“내담자를 다 안다는 생각, ‘상담한다고 바뀌겠어?’하는 마음, 천년만년 살거라는 생각을 버린다면 가능하겠다.”나도 상담할 수 있겠다. 정말 다행이다.           

씨앗들은 저마다 나름의 꽃을 피운다. 꽃 피는 시기도 다 제각각이다. 삶의 의미를 못느끼는 십대도, 갱년기를 심하게 겪는 중년도 언제 자기만의 꽃을 피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봄에 피는 꽃들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가? 산수유는 봄의 시작에 피고, 벚꽃은 봄의 절정에 핀다. 라일락은 봄의 향기를 더하고, 장미는 봄의 끝에 담벼락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이 세상을 만들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그분의 섭리에 따라 함께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면 된다. 내 몫, 내게 주신 씨앗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우리 앞집에 핀 능소화가 오늘따라 한없이 예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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