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휴양지 말고 대학도시 게인즈빌 (Gainesville)에 말이죠.
출국 인사를 핑계로 보고 싶던 얼굴들을 실컷 보다가 8월 18일 드디어 출국일을 맞이했다. 목적지는 플로리다 주 게인즈빌. 지금 학위과정에서 진행 중인 연구와 관련하여 감사한 인연이 닿아 앞으로 6개월 동안 미국 플로리다에서 실험실 생활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의 길고 긴 대전 생활이 잠시나마 중단되었는데 학부생활을 시작한 2014년 이후 반년 동안 대전을 떠나 있게 된 적은 9년 만에 처음이다. 연구적 포부 외에도 앞으로 내가 직면하고 있는 6개월이라는 시간은 나의 삶 자체에 신선함을 (refreshing) 선사해 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나에게 지금은 굉장히 선물 같은 시간임이 분명하다. (물론 출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걱정이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을 고백해 보자면 '플로리다'라는 'Sunshine State (햇살 주; 미국 Florida 주의 속칭)'는 내 취향에 꼭 맞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천혜의 휴양지"로 일컬어지는 이곳은 온갖 해양스포츠와 야자수가 길게 늘어져있는 바닷가 그리고 각종 야생동물들이 그 이미지를 대표하는 곳이다. 게다가 1년 내내 무더운 날씨를 자랑하는(?) 이곳은 동부의 추위를 견디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겨울 방학을 보내러 오는 휴양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물놀이보다는 산림욕, 바닷가보다는 휴양림을 좋아하고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손꼽아보라고 하면 1초의 고민도 없이 "가을"을 외치는 나에게 플로리다 주는 도착하기도 전에 기가 빨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맨 처음 파견 연구 계획이 확정되었을 때 양가감정이 있었다. 어디로든 대전을 떠나 세상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과 좀 더 나의 성향에 꼭 알맞은 곳에 도착하고 싶다는 욕심 간의 혼란스러움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생떼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경험은 중요하다 (Every experience counts)'는 믿음 하나로 이번 기회 역시 잡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런 기회가 아니었자면 절대 와 볼 일이 없었을법한 동네인 플로리다 주 게인즈빌 (Gainesville)에 도착하게 되었다.
워낙 일찌감치 준비하고 미리 계획하는 편이라 이동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나의 첫 번째 플로리다행 여정은 꽤나 긴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환승 (Transfer)' 때문이다. 지금까지 환승을 필요로 하는 여행지에는 가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행할 때도 웬만하면 직항을 이용하는 편이었다.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고 체력을 비축해야 여행 기간을 더 알차게 즐길 수 있다는 신조를 지키기 위함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도착하는 국가의 공항 시스템에 따라 어떤 환승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은 입국 시 여권 검사도 까다롭고 비행기 편의 이착륙 시간도 불규칙적이고 환승 시간의 여유도 두 시간 남짓이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되었다. 출발 전 인천공항 게이트에서부터, KE035 D55 좌석 위에서도, 심지어 내리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환승 절차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돌발 상황을 예측하려고 했다. (다시 생각해도 굉장히 스트레스받는 상황이군.)
하지만 어디에든 다 방법이 있는 법. 물론 입국 심사 줄이 줄지 않아 30분 정도 마음고생을 세게 했지만 필요한 서류를 잘 챙겨간 덕분에 인터뷰를 30초 컷으로 마치고 짐을 찾아 국내선 터미널로 전력질주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스트레스받은 것 같기도 하다... 입국 심사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항공사에서 어련히 알아서 최적의 환승 시간을 선택해 준 표인데도 혼자 사서 마음고생한 것 같다. 다음부터는 안 그래야지.) 무려 탑승 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게이트 앞에 도착했고 애틀랜타에서 게인즈빌로 넘어가는 비행기에 탑승해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이제 무사히 잘 도착해서 짐을 찾고 마중을 나와주신 박사님을 찾으면 된다! 고 말이다.
어디든 타지 생활을 시작할 때는 처음이 가장 어렵기 마련인데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도착해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데려다주시고, 1차 숙소 정리를 마치고 나서는 이곳 게인즈빌의 연구실 교수님과 다 함께 저녁 식사도 하고, 귀가 전에는 당장 필요한 생필품과 (나름 야무지게 챙겨 왔지만 무게 때문에 미쳐 한국에서 가져오지 못한 아이템도 있었다) 식재료를 사러 월마트까지 동행해 주셨다. 덕분에 무거운 세제나 생수, 그리고 당장 주말 동안 필요한 먹거리 아이템을 구매했고 무사히 게인즈빌에서의 첫 번째 주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첫 번째 주말은 첫 번째 주말이 맞나 싶은 주말이었다. 아무래도 자취 경력 3년 차이다 보니 더 금방 주변 동네를 파악하고 곧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일어나자마자 친구/가족들과 페이스타임을 했다. 한국과 13시간 시차가 나서 그들의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이 서로 가장 적합한 시간대인데 장시간 비행과 도착하자마자 먹은 소금에 절여진 미국 음식을 먹어서인지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지만 영상 통화를 통해 인천공항에서 게인즈빌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과 이곳의 숙소 상태를 공유했다.
그 후 전 날 월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 먹고 도착 전부터 구글맵에서 검색해 둔 요가 스튜디오를 찾아 어플로 멤버십 가입을 완료하고 첫 번째 수련을 하러 출발했다.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Yoga Pod 요가원에서 HOT-Flow 수련을 통해 피곤에 절어있는 몸을 풀어주며 역시 인생을 별거 없다고 느낄 정도의(?) 행복감을 만끽했다. (게인즈빌에서의 요가 수련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볼 계획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위치하고 있는 아시안 마켓에서 간단하게 과일을 사서 귀가했다. (하필이면 가장 가까운 마트가 아시안 마켓이라 운이 좋다고 느낀 아시아인 나야 나.) 이른 저녁을 먹으며 쉬다가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아쉽다는 마음에 동네를 탐방할 겸 조깅에 나섰다. 이곳은 평지기도 하고 덥긴 하지만 바닷가와는 나름 거리가 있어 아주 습하지는 않기 때문에 조깅하기에도 굉장히 좋은 조건을 자랑하고 있었다. 틈틈이 (특히 주말에) 자연 속 조깅을 즐기다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첫 번째 주말의 마지막은 아마존 (Amazon) 쇼핑으로 마무리했다. 이전에도 사용해 본 적은 있었는데 센스 넘치는 분의 추천으로 Amazon Prime에 가입해서 선물 받은 기프트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기프트 카드는 좀 더 간직할만한 특별한 물건을 사고 싶다는 마음에 아직 사용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존 프라임은 마치 국내 쿠팡 와우 회원이랑 굉장히 비슷한데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처럼 커다란 나라에서도 일정 금액을 넘기면 익일 배송이 가능하고 아마존에서 운영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다. 게다가 학교 메일 주소로 학생 인증을 하면 더 저렴한 학생 멤버십 가입이 가능해지는데 심지어 첫 6개월 동안은 가입비가 무료이다... 학생한테 아주 친절한 나라다... 나는 이곳에서 딱 6개월 동안 머물 계획이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타이밍이었다. 당장 필요한 드라이기랑 (미국에서는 변압기 사용을 해도 한국 전압에 맞춰진 드라이기 사용은 위험할 수 있다) 요가 매트, 그리고 각종 영양제를 구입했다.
야무지게 시작한 플로리다 게인즈빌에서의 첫 주말을 마치고 야심 차게 곧바로 연구실 출근을 한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연구실 적응기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To be contrinued... 아무튼 내 눈앞에 놓인 반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생각해 보면서 그와 동시에 너무 고민만 하지 않고 연구든 여행이든 수련이든 뭐든지 다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하다가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